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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나콜로에서, 아버지의 뜻이] <제5장> 정화의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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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정화의 때
하느님께서는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반드시 정화의 때를 허락하십니다. 이 정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녀들을 새롭게 빚으시려는 하느님의 자비의 개입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정화가 왜 불가피한지, 그 원인과 다가옴을 알리는 표징을 구체적으로 밝혀 주십니다. 또한 고통의 시기에 자녀들이 어떻게 보호받고 준비될 수 있는지, 티없으신 성심의 피난처와 마음의 성전, 광야의 단련, 그리고 교회의 수난 속에서 드러나는 성모님의 동행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무엇보다 성모님께서는 “지금이 내가 너희에게 예언했던 때이니, 바로 정화의 시기이다”(99,15)라고 단언하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바로 그때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 장에서는 정화의 필요성과 그 징표들, 그리고 그 시기에 드러나는 성모님의 보호와 준비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5.1 정화의 필요성
성모님께서는 메시지 안에서 정화가 왜 불가피한지를 개인과 교회, 그리고 세상 차원에서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성모님께서 직접 지적하신 말씀을 요약한 것이며,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 할 시대적 표징입니다.
정화란 교만과 불순종 속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세상과 인류를 다시 회복시키려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획입니다. 개인의 죄와 타락, 교회의 거룩함 상실, 세상의 하느님 거부가 누적될 때,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화를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정화는 회개와 회복으로 이끄는 은총의 시간이며, 우리가 시대의 표징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5.1.1 개인 — 양심 상실과 불순결
개인은 점점 양심을 잃고 회개를 거부하며, 정신·마음·몸의 순결을 상실한 채 살아갑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고, 그분 없이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오만한 착각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길입니다.
사탄은 교만으로 유혹하여 죄를 정당화하게 하고, 참회의 필요를 지워버립니다. 수년간 고해성사를 받지 않은 영혼들은 은총의 상태를 잃고 불결과 물질 집착, 교만 속에서 썩어갑니다. 교만은 사고를 오염시키고, 무질서한 애착은 마음을 흐리며, 성소자들조차 순결과 독신의 약속을 버리고 불순한 생활을 일삼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모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개인의 타락에 머물지 않고 다른 영혼들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5.1.2 교회 — 배신과 거룩함 상실
교회 안에서도 진리와 교리가 흐려지고, 성소의 거룩함이 무너집니다. 기도와 전례가 소홀히 여겨지고, 무규율과 분열은 교회를 내부에서 약화시키며, 심지어 교황님마저 고립시키는 배신의 바람이 붑니다.
사탄은 목자들 안에까지 침투하여 오류의 어둠으로 교회를 덮습니다. 가톨릭 신앙의 기초는 모호해지고, 진리는 세속적 이성에 맞추어 조금씩 왜곡·축소되어 본질을 잃어갑니다. 성전은 죄로 더럽혀지고, 사제와 수도자들은 죄책감 없이 불결한 삶에 빠집니다. 일부는 사탄의 지배를 받아 모범은커녕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순명의 정신이 약화되어, 사제직 고유 규율과 교회법은 경멸당하며, 세속화된 사목이 확산됩니다. 분열의 바람은 사제·주교·추기경 사이를 가르고, 교황님의 권위와 가르침은 은근히 저버려집니다. 이러한 내적 배신은 교회의 힘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5.1.3 세상 — 하느님 거부와 도덕적 붕괴
세상은 창조주 하느님을 거부하고, 인간 중심의 문명을 세우려 합니다.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한 망상 속에서 도덕적 붕괴와 영적 암흑이 확산됩니다.
사랑 대신 증오와 폭력이 판을 치며, 무방비한 이들이 희생됩니다. 전쟁과 테러뿐 아니라, 일상의 냉혹함과 무관심 속에서도 폭력은 이어집니다. 죄는 합법화되고, 오히려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으로 옹호됩니다. 물질·권력·쾌락은 새로운 ‘신’이 되어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그 결과 세상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반역과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든다고 성모님께서는 경고하십니다.
5.2 정화의 표징
성모님께서는 다가오는 정화가 어떤 징표와 현상으로 드러날지를 알려주십니다. 이미 개인과 교회, 세상 안에서 감지되는 위기의 현상으로 혼란, 무규율, 분열, 박해가 나타납니다. 이 네 가지 표징은 정화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하느님의 경고이자, 동시에 우리를 회개와 순명으로 이끄시는 사랑의 초대입니다.
5.2.1 혼란 — 진리의 빛을 가리는 연기, 오류의 확산
첫째 표징은 교회를 뒤덮는 혼란입니다. 교의와 전례, 규율이 뒤섞이고, 계시된 진리마저 인간 이성의 잣대에 맞추려는 경향이 팽배합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신비는 단순화·축소되어 오류와 뒤섞이고, 가톨릭 신앙의 근간은 모호해집니다. 목자들마저 오류에 빠져 빛을 잃고, 이는 사탄이 내뿜는 연기처럼 교회를 어둡게 만듭니다.
성모님은 오직 순수하고 단순하게 복음을 살고, 담대히 선포함으로써 혼란의 어둠을 몰아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5.2.2 무규율 — 순명의 상실
둘째 표징은 무규율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내적 순명이 사라지고, 사제직 고유의 기도와 전례 규정이 무시됩니다. 기도를 버리고 활동에만 몰두하거나, 세속적 생활양식을 받아들여 교회의 규율을 경시하는 풍조가 퍼졌습니다. 독신제와 사제복 착용 같은 교황님의 지침마저 무시되며, 성직자 본분이 약화됩니다.
성모님은 작은 아기처럼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는 삶을 살라고 촉구하시며, 순명이 회복될 때 교회의 질서도 회복될 것이라 하십니다.
5.2.3 분열 — 사랑과 일치의 파괴
셋째 표징은 분열입니다. 교회의 일치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지만, 사탄은 교황님과 목자들, 성직자들 사이의 사랑의 유대를 찢습니다. 사제, 주교, 추기경이 서로 대립하고, 교황님은 고립됩니다. 겉으로는 일치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교황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태도가 확산되었습니다.
성모님은 교황과 일치하는 은밀한 씨앗이 될 것을 요구하시며,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교회의 내적 일치를 위한 숨은 희생자가 되라고 호소하십니다.
5.2.4 박해 — 교회 안팎의 시련
넷째 표징은 박해입니다. 세상으로부터는 복음 선포를 막고, 교회 재산과 권리를 빼앗는 노골적 박해가 일어납니다. 더 교묘한 형태는 세속 정신과 타협하도록 교회를 압박하여, 생명력을 서서히 질식시키는 방식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사탄과 결탁한 목자들에 의해 충실한 사제들이 고립되고 방해받습니다.
성모님은 이 박해가 교회를 더 순결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정화의 도구라고 말씀하시며, 티없으신 성심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어 공동 구속의 길을 걸으라고 초대하십니다.
5.3 정화 속 성모님의 보호와 준비
정화의 시기에는 고통과 시련이 따르지만, 그 안에서 성모님은 자녀들을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성심의 피난처로 불러 위로하시고, 마음의 성전에서 변화를 이끄시며, 광야에서 단련하시고, 교회의 수난 속에서도 끝까지 동행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 안에서 드러나는 보호와 준비가 바로 정화 속에서 체험되는 희망입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기도와 고통이 필요하다. 착하고 너그러운 다른 아들들의 기도와 고통이 있어야 내가 그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무수한 영혼들 속에 하느님의 모습을 되새김으로써 숱한 내 자녀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21,9-11) “죄에 떨어진 이들에게도 새 순결을 주리라. 사랑과 통회로 말미암아 더욱 아름다운, 두 번째 순결로 이끌어 주리라. (…) 오직 그 향기의 그윽한 파도를 타고서만, 내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의 임금이 되시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21,20–21) 이 말씀은 정화가 영혼을 새롭게 빚어 주시는 은총의 과정임을 보여 줍니다. 회개와 봉헌 안에서 성모님께 자신을 맡길 때, 죄 속에 있던 이들도 새로운 순결과 자유를 얻습니다. 그때 교회와 세상은 성모님이 약속하신 새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 은총 체험 이야기
성모님의 말씀은 저의 삶 안에서도 실제로 확인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불타는 도가니’(299,6)의 은총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불처럼 타올라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불은 제 안의 죄와 나약함을 태워 없애 주었습니다. 때로 다시 죄에 떨어지더라도 회개와 고해성사 안에서 치유와 해방을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실망과 낙심에 사로잡힐 때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었고, 영적 메마름 속에서는 성체와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기쁨이 제 안에 흘러들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예수님의 성심과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이 제 안에 함께 살아 계심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체험은 정화가 고통 속에서도 은총으로 빚어지는 길임을 확증해 주었고, 성모님께서 고통의 순간을 보호와 희망으로 바꾸신다는 사실을 제 삶 안에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5.3.1 티없으신 성심의 피난처 — 휴식·위로·희생 제물의 준비
정화의 길은 험난하여 자녀들이 “그만 걷고 싶다”(149,3)는 유혹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피곤과 방해 속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도록, “엄마의 사랑이 너희를 위해 예비해온 피난처” (149,1)인 당신 성심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이 피난처는 삼위일체께서 마련하신 하느님의 정원으로, 순수한 빛과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며, 특히 “정화의 무시무시한 때”(154, 10)를 견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식처입니다.
성모님은 전 교회, 곧 교황과 주교, 사제, 모든 신자가 이 피난처에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그렇지 않으면 이미 드세지기 시작한 큰 폭풍에 휩쓸려 갈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5.3.2 마음의 성전 — 영혼·몸·마음의 정화와 변화
성모님은 자녀들을 “티없으신 성심의 성전”(185,6)으로 부르시며, 당신께서 어린 시절 성전에서 봉헌과 기도, 침묵과 이탈을 통해 준비하셨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이제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 준비를 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이 마음의 성전 안에서 자녀는 세 차원의 변화를 체험합니다.
이 준비는 침묵과 기도, 세속과 피조물에 대한 이탈과 포기를 통해 완성됩니다. 이렇게 단련된 자녀는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고, 끝까지 이를 성취할 준비가 됩니다. 바로 이 길이 성모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모님은 이렇게 단련된 자녀들을 당신 성심의 성전에서 지존하신 성삼께 가장 고귀한 보속으로 봉헌하십니다.
5.3.3 광야 — 정화와 단련의 훈련장
광야는 자녀들이 예수님과 함께 들어가 성부의 계획을 깨닫고, 그 뜻을 끝까지 이루도록 단련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전 광야에서 기도와 시련을 통해 사명을 준비하셨듯, 성모님도 우리를 같은 길로 부르십니다. 이곳에서 자녀들은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실 각오”(195,4)를 배우며, 사명을 위한 준비를 완성합니다.
성모님은 “때의 절반”(202,3)을 광야에서 은둔하시며, 자녀들의 메마른 영혼을 당신의 피난처로 삼아 정성껏 가꾸십니다. 은총의 물로 메마름을 적시고, 상처를 치유하시며, 사랑의 씨앗을 뿌려 꽃피우십니다. 성모님의 현존으로 변모된 이 광야는 결국 기도·겸손·순결·침묵·신뢰·작음·순명·완전한 맡김의 덕행으로 장식된 정원이 됩니다.
광야에서 주어지는 은총의 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광야는 성모님께서 자녀들을 지키시며 단련하시는 영적 훈련장입니다. 이곳에서 메마른 영혼은 성모님의 손길 아래 정원으로 변화하며, 자녀들은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겠다고 고백하면서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힘을 받습니다.
5.3.4 교회의 수난 — 정화의 절정에서 성모님과 동행
정화의 절정에서 교회는 갈바리아의 길을 걸으며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무규율과 분열, 박해로 약화된 교회가 마침내 더할 나위 없는 깊은 정화를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교회를 홀로 두지 않으시며, 고통이 깊어질수록 그분의 도움과 현존은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고통이 곧 당신의 성심을 찌르는 고통이라고 밝히십니다.
“교회의 모든 고난이 '티없이 순결한 내 고통의 성심' 안에 고스란히 있다.” (209,3) “지금도 나는 그분과 함께, 그분의 '게쎄마니', '갈바리아',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숨을 거두심에 이르는 시간을, 바로 그 시간을, 교회를 위해 다시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209,6) 교회의 수난은 성모님의 모성 안에서 새 생명을 낳는 산고이며, 곧 다가올 빛의 새 시대를 준비하는 통과의 길입니다.
이 길에서 특별히 교황님은 성모님이 준비하신 안전한 도움으로 제시됩니다. 성모님은 “내가 너희에게 얻어준 예수님의 대리자, 곧 교황을 사랑하고 그의 말을 따르라”(191,8)고 하시며, 교황님 또한 “게쎄마니와 갈바리아의 때”(23,2)를 함께 겪는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며, 그의 곁에 서서 교회의 일치와 충실성을 지켜내도록 부름받습니다.
폭풍이 거세질수록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여인”(191,13)의 빛은 더욱 밝아지고 뚜렷해집니다. 이것이 곧 티없으신 성심의 승리, 곧 교회와 자녀들의 희망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5.4 시대의 묵상 ― 정화 안에서의 고통과 은총
정화의 길은 언제나 죄의 결과만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무죄한 이들의 고통 안에서도 드러나며, 바로 그 고통이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한 은총의 통로가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떤 이들은 음행과 도덕적 문란으로 지은 죄 때문에 상처를 입지만, 어떤 이들은 선량하고 무죄하면서도 같은 고통을 입음으로써, 그 고통이 수많은 악인들의 구원을 위해 쓰이게 된다”(412,7)고 밝히십니다. 이는 곧 교회의 신비로운 일치 안에서 무죄한 이들의 고통이 속죄와 공동 구속의 자리가 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욥기의 시련을 통해, 하느님께서 사탄마저 도구로 사용하시어 의인들을 단련하시고 더 의롭게 하심을 보여 줍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성인들이 병과 박해, 의혹과 죽음을 통해 이 신비에 참여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어린 나이에 불치의 병을 겪으며 모든 고통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봉헌했고, 성 비오 신부님은 평생 성흔과 병고, 그리고 교회 안팎의 의혹과 박해를 공동 구속의 은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파티마의 어린 목동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도 짧은 생애 안에서 중병과 고통을 봉헌하며, 세상 죄인들을 위해 성모님과 함께 희생 제물이 되었습니다. 메주고리예 발현 목격자인 비츠카 역시 오랜 병고와 육체적 시련을 겪었는데,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성모님께서 그것을 수많은 영혼들의 회개를 위한 특별한 은총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주셨다고 합니다.
이 신비는 오늘 우리의 삶에도 드러납니다. 때로 가족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아픔, 심지어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는 설명할 길 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이를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정화의 신비 안에서 이해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병, 가족의 죽음은 우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 정화의 표징이 됩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의 교만과 집착을 끊어내고, 하느님께 의탁하도록 이끄는 도구가 되며, 세상 안에 만연한 죄와 반역을 대신 보속하며 회개와 구원의 길을 여는 표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정화의 때는 하느님께 되돌아오라는 자비의 시간이며, 우리를 회개와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 은총 체험 이야기
저 역시 제 삶 속에서 정화의 신비를 깊이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세속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암에 걸리셨습니다. 그 사건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표징임을 깨닫지 못한 채, 저는 여전히 세속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아버지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할 수 있는 자리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기적을 체험한 아버지는 그 후 매일 수십 단의 묵주기도를 바치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이 모든 일은 제 삶을 새롭게 하시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끄신 섭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정화의 길 위에 놓여 경제 활동을 내려놓고 힘겨워할 때, 주님께서는 아버지를 통해 수년 동안 저의 가정을 물질적으로 도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한 사람을 도구로 삼아 또 다른 이를 이끄신다는 신비가 제 삶 안에서 분명히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저를 성지에서 봉사와 일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그곳에서 몰이해와 추방까지 겪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것마저도 하느님께서 제 영혼을 정화하시려는 은총의 도구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길을 잃은 영혼을 다시 당신께로 이끌기 위해, 우리의 삶 속 사건과 만남 하나하나를 섭리하시며 그 안에서 당신 뜻을 드러내십니다. 세상 눈에는 보잘것없고 버려진 길처럼 보여도, 그 길은 하느님의 보호와 섭리 안에서 구원으로 향하는 은총의 여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장을 마치며
정화는 하느님께서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자비로 개입하시는 은총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혼란과 무규율, 분열과 박해는 회개와 순명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표징으로 드러납니다. 이때 성모님께서는 자녀들을 당신 성심의 피난처로 불러들이시어 보호하시고, 마음의 성전과 광야에서 단련하시며, 교회의 수난 속에서 끝까지 동행하십니다.
따라서 정화의 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뜻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티없으신 성심의 승리를 준비하는 특별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정화의 은총은 우리가 회개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성모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저하지 않고 함께 회개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6장에서는 성모님께서 직접 알려 주신 그 ‘회개의 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에서 참조한 메시지> 21, 99, 112, 118, 120, 147, 149, 154, 168, 169, 170, 171, 185, 191, 195, 202, 209, 299,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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