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4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을 보내셨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6/14): 연중 제11주일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3:46 ㅣ No.190110

* 제1독서: 탈출 19,106ㄱ

* 제2독서: 로마 5, 6-11

* 복음: 마태 9, 36-10, 8

* <오늘의 강론>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하느님 백성의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체결을 약속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계약 체결을 통하여,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독점적인 수취자가 아니라, ‘사제들의 나라’,의 사명, 곧 하느님과 중재를 이루는 보편적 구원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로마 5,11)라고 고백합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그 사랑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되었음’을 증언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났고, 모든 이가 구원을 받았음을 확인해줍니다.

<복음>은 세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치유의 장면’,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장면’, ‘사도들을 파견하시는 장면’입니다.

<첫째 장면>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고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입니다.”(마태 9,36)

이는 인도하고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목자 없는 양”의 가련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괴롭힘을 당하고 짓눌리고 상처받고 “시달리며 기가 꺾여” 방향을 잃고 쓰러져 방치된 현실적이고, 영적인 상태를 말해줍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더욱 안타까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마태 9,37)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8)고 말씀하시면서도, 못내 “가엾은 마음”을 어쩔 수 없으신 까닭에 손수 그 “일꾼들”을 뽑으십니다.

그러니 <둘째 장면>에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것은 ‘가엾은 군중을 위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곧 그들에게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복음의 수취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의 사명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들에게 ‘가엾이 여기는 당신의 마음’을 주시어 당신이 하신 일을 하게 하십니다.

“열 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마태 10,1)

사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이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중에 있습니다. 힘이 없어 시달리고, 가진 게 없어서 시달리고, 무능해서 시달리고, 온갖 고통과 질병과 가난과 근심에 시달리는 이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일자리를 못 얻어 거리에서 기가 꺾여 방황하는 이들, 돈이 없어 자녀들에게도 기가 꺾여 위축된 이들, 고국을 떠나와 이방인이 되어 기가 꺾여 있는 이들에 둘러싸여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곁에 있는 형제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또 보지 않으려 하는 걸까?

그것은 ‘가엾이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선한 목자의 마음’을 지니지 못한 까닭은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도 ‘그분의 마음’을 품어야 할 일입니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1코린 2,16)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립 2,5)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예수님의 마음’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사실, 당신께서는 ‘열 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셧습니다. 바로 당신의 마음입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으로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습니다.’(마태 10,1 참조).

<셋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을 사도들에게 사명으로 주어 파견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로 가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6-8)

그러니 우리는 ‘이미 그 마음을 거저 받은 것입니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 없는 것을 줄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곧 이미 받았기에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받지 않는 가짜인 자기가 만든 마음이 아니라, 거저 받은 진짜인 예수 마음을 주어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이 당신 마음이 되게 하소서.

가짜의 제 마음이 아니라 진짜인 당신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게서 드러내소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게 하소서. 아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주님!

당신은 거저 주시는데도 제가 받지 못함은

제 그릇이 가득 차 있어 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입니다.

나누지 못해 비워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더러는 비워져도 엎어져 있어 담을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아니, 잘못 기울어져 있어 다른 데서 오는 것을 담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제는 제 자신을 비우고,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당신 사랑을 따라 거저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7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