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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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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첫째가는 계명”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 묻는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28절)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큰 계명을 들어 하나로 통합하여 답하신다. ★하느님 사랑: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이웃 사랑: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과 예언서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계명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신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0절) ‘마음을 다하여’라는 표현은 온전히, 갈라짐 없이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라는 뜻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하느님 사랑은 다른 모든 사랑의 기준이며, 우리의 모든 사랑과 행위가 하느님께로 향할 때 참된 신앙과 덕이 된다.”(De Doctrina Christiana, 1,5 요약)라고 풀이한다. 교부들은 하느님 사랑을 전 존재를 향한 사랑의 총체라고 보았고,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행위가 일치하는 삶을 의미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31절)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하느님을 사랑하면서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형제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신앙”이라고 강조한다.
예수님은 마태 25,40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구체적 증거이다. 교회의 전통적 해석에서도,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이웃 사랑이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랑은 신앙과 실천을 통합하는 핵심으로 보았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마음, 정신, 힘, 목숨을 분리하지 않고 하느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형제, 자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일상에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교리 지식이나 외적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삶 속에서 통합될 때, 신앙은 완전해지는 것이다.
율법 학자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33절)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축복하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34절) 이는 우리가 계명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이미 하느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계명을 삶 속에서 살아낼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사랑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가장 큰 계명 사두가이들의 억지 질문에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일깨우신 예수님께 이번에는 율법 교사 한 사람이 다가와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모든 계명”으로 표현되는 그 많은 율법 가운데 어떤 것이 첫째가는 것인지 여쭙는 질문은 율법 교사들이 자주 접했던 질문이며, 그들 자신도 궁금했던 질문입니다. 첫째가는 계명이 그들의 모든 종교적 삶을 결정짓는 요소로 인식되었기에,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이라면 피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으며, 오늘은 그 자리에 예수님이 서십니다.
예수님은 서슴지 않고 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야훼)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전혀 새로운 가르침은 아닙니다. 이미 유다인들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구갑’에 넣어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되뇌던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의 내용입니다(신명 6,4-5). 그런데 예수님은, 첫째가는 계명이 질문 대상이었음에도, 묻지도 않은 “둘째가는 계명”을 덧붙이시며, 첫째가는 계명 못지않은 계명으로 선언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제한이 없으며, 이웃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며, 이웃 사랑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 사랑에 이를 수 있음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집니다. 질문을 던진 율법 학자가 예수님의 답변을 접하고 나서 보인 반응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분명 율법 학자는 꼭 한번 듣고 싶었던 답, 본인이 율법의 정신에 대하여 평소 지니고 있었던 신념을 확증해줄 수 있는 답을 예수님의 답변 속에서 찾았기에, 서슴지 않고 자신의 소견을 밝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율법 학자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하고 격찬하십니다. 늘 예수님의 적대자로 등장하던 율법 학자에 대한 격찬은 복음서에서 유일한 경우입니다.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동의한 적은 있어도(루카 20,39 참조), 이와 같은 적극적인 수용을 보인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는 율법 학자의 “슬기로운 대답”에 대한 치하 차원을 넘어, “모든 계명”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리해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만큼 중요한 가르침임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열렬한 제자로서의 모습을 띤 율법 학자도 그대로 받아들였듯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경의 가르침, 하느님 말씀의 전부요 핵심임을 일러주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을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이 사랑을 이웃 사랑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사명 앞에 섭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우리보다 못한 처지에서 힘들어하는 이웃을 살피는 가운데,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맘껏 펼쳐나가는, 의미와 보람 가득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31ㄷ) '하나의 사랑을 위하여!' 오늘 복음(마르12,28ㄱㄷ-34)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는 율법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12,28)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29-31) 율법 학자가 '가장 큰(The most)', 최상급의 계명 하나를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 세 개의 사랑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라는 이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인가?' 내가 하느님을 닮은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 안에 머무는 것이,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 또 다른 이웃인 너를 사랑하게 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너를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또 다른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은총 안에서 너를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12,34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해 '나 자신과 너와 하느님'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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