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1일 (월)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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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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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5-10 ㅣ No.189531

[부활 제6주일 가해] 요한 14,15-21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어떤 결혼식에서 주례 선생님이 신랑 신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나이 서른을 넘기면 고쳐서 쓸 수가 없습니다. 그저 보태서 쓸 뿐 입니다. 그 사람에게 부족한 부분을 내가 보태서 채워주는 겁니다.” 참으로 공감되는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배우자를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억지로 바꾸려고 들다가 서로 마음이 상해 관계가 틀어지고 마는지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습관이 되고 삶이 되어 굳어진 모습은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바뀌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게 중요합니다. 그에게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내 사랑으로 기꺼이, 기쁘게 채워주면 됩니다. 그러면 상처를 입을 일도, 감정이 상할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둘이 함께 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향한 사랑과 계명의 실천을 서로 연결시키십니다. 당신께서 가르쳐주신 계명들을 충실히 지켜야만, 비로소 우리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 방식을 고집하며 상대방을 소유하고 지배하려 드는 일방적 사랑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기고, 자기 자신은 사랑이 주는 참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기 위해, 상대방이 바라는 것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상호 보완적 사랑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완성에 이르게 하지요. 그러니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을 그분께 요구하려고만 들지 말고, 주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여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나의 부족함을 채워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힘겨운 사랑의 여정을 끝까지 잘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 힘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보호자’를 보내주겠다고 하십니다. ‘보호자’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는 법정용어로서 ‘가까이 불린 이’라는 뜻입니다. 무섭고 차가운 법의 심판대 앞에 의지할 이 하나 없이, 걱정과 두려움에 떨며 서 있는 피고인 곁에서, 그의 입장을 대변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변호자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의 존재가 피고인에게는 너무나 큰 위로와 힘이 되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존재, 즉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하십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 모두가 나의 잘못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여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막막함과 고독을 느낄 때, 우리와 함께 계시며 힘을 주시는 분, 마치 내 마음 안에 들어와 계신 것처럼 나의 슬픔과 아픔, 불안과 걱정을 완전히 이해해주시고 깊이 공감해주시며 든든하게 나를 변호해 주시는 분을 우리에게 보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실수와 잘못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도록, 끝까지 보살펴 주시고 지켜주겠다고 하십니다.

 

사랑은 언제나 함께 있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할 때 뿐만 아니라, 그가 고통과 시련의 무게에 짓눌려 나라는 존재를 떠올리지도 못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그와 함께 머물러주는 것이 사랑인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내내 그분과 함께 하셨고, 아드님께서는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순명으로 하느님 안에 머무르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당신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는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그분 안에 머무르지요. 이처럼 참된 사랑의 힘으로 서로가 서로 안에 머무르는 것이, 그렇게 해서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모두 함께 누리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사랑의 일치’입니다. 그 일치에 이른 이들은 세상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진보와 보수라는 ‘대립’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선을 지향하되 악을 미워하지 않고 회개로 이끌고, 정의를 외치면서도 불의에는 함께 아파하며, 진보의 개혁을 보수의 안정으로 균형 잡아 함께 발전해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인 겁니다. 그렇게 모든 이가 회개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함께 머물러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모두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당신 사랑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분으로부터 나 또한 사랑받는다는 분명한 확신 속에서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지요. 우리를 향한 주님 사랑은 절대 애매하거나 모호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상처 입을까봐 망설이고, 손해를 볼까봐 주저하는 우리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주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미루거나 주저하지 말고, 복잡하게 재고 따지며 계산하려 들지 말고, 일단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완성되는지를 기대하며 지켜봅시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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