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7일 (목)
(백)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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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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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5-06 ㅣ No.189460

우리는 요즘 뉴스를 통해 전쟁의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부딪히고, 서로의 질서를 내세우며 상대를 압박합니다. 각 나라는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보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질서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어린 생명이 희생되고,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인간이 만든 질서는 때로 이렇게 생명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세상의 질서는 힘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쪽이 자신의 기준을 관철하려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평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은 아합왕도,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다윗도 결국 하느님의 심판 앞에 서야 했습니다. 인간의 힘과 논리는 결국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무엇이 참된 질서인가?” 신앙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같은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유다인 공동체는 자신들의 전통과 율법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공동체는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유다인의 기준만을 강요했다면 교회는 분열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기도하고 식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합니다.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질서를 선택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랑과 포용, 생명의 질서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걸어온 길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사목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곳에 가면 먼저 듣고, 먼저 이해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기준을 앞세우기보다, 공동체의 삶과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급한 변화는 상처를 남기지만,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공동체를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단순한 권고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질서입니다. 힘이 아니라 사랑, 지배가 아니라 섬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 하느님의 질서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서는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질서는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지만, 하느님의 질서는 상대를 살리려 합니다.

 

교부이신 성 그레고리오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은 태어나고 자라며 완성되어 갑니다. 우리는 세례로 태어나고, 말씀과 성사로 자라며,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향하는 곳은 경쟁과 승리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어떤 질서를 선택하며 살고 있습니까? 세상의 기준입니까, 하느님의 기준입니까? 전쟁은 죽음을 낳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생명을 낳습니다. 힘은 두려움을 남기지만, 사랑은 기쁨을 완성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질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질서를 선택합시다. 그 선택이 우리를 참된 평화로 이끌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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