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4일 (월)
(백)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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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가해, 생명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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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5-03 ㅣ No.189417

[부활 제5주일 가해, 생명주일] 요한 14,1-1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해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사실 걸어보면 그리 대단한 길이 아닙니다. 유럽의 유명 관광지처럼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나 내세울만한 특산품 조차 없는 그냥 '시골길'일 뿐입니다. 그러나 매년 수 십 만명의 사람들이 그 길을 찾습니다. 그들은 왜 그 길을 걷는 것일까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걷는 ‘관광객’들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일 뿐, 그 과정은 어떻든 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힘들면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채 시끄럽게 떠들거나, 냄새 나는 음식을 해 먹으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기도 합니다. 또한 본인이 그곳에 다녀갔음을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 낙서를 하는 등의 만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난 후 그들에게 남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찍은 ‘기념사진’ 한 장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인 ‘순례객’들입니다. 이들은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여정을 걷는 동안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웁니다. 무턱대고 부렸던 ‘욕심’을 비우고, 삶을 내 뜻대로 쥐고 흔들려고 했던 ‘계획’을 비우고, 육체의 즐거움만 쫓았던 ‘기호’를 비우고 그렇게 모든 것을 비워냅니다. 그러고나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 후,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렇게 순례길이 끝날 때 즈음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그들은 그 길 안에서 물리적 장소가 아닌 “자기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구원의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을 걷는 ‘순례객’들입니다. 그 목적지는 물리적인 장소도, 세상 사람들이 꿈꾸는 세속적 성공도 아니지요.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그분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인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정이 중요한데 제자들은 그 길을 생략한 채 ‘목적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길’을 먼저 알아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지, ‘목적지’만 생각한다고 ‘길’이 알아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지요.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이지, 신앙생활의 결과로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하는 ‘대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필립보의 요청을 보면 과정은 소홀히 여기며 대가만 바라는 제자들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힘든 길을 가려고 하지 않고, 그냥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거룩하고 좋은 것들을 수동적으로 누리려고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뜻이 하느님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기만을 바랐습니다. 길은 걷지도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심보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 얻겠다는 허황된 욕심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십니다. ‘구원’은 우리가 가만 있으면 예수님이 알아서 갖다 주시는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는 ‘과정’인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를 눈으로 볼 수도, 그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목적을 이룰수 있다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세상의 관점에 물들어 있으면 악마의 유혹에 쉽게 걸려 넘어집니다. 최대한 쉽고 편한 길로 가보겠다는 얄팍한 심보를 갖고 있으면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됩니다. 구원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저 꾸준히 그리고 충실히 주님 뜻을 실천하며 그분 뒤를 따라가는 것만이 하느님 나라에 다다르는 유일하고도 완전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유혹에 휘둘려 엉뚱한 곳에서 헤매지 않도록, 욕심에 눈이 멀어 벼랑인지도 모르고 가다 굴러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당신 말씀과 가르침으로 우리 삶 곳곳에 사랑의 ‘이정표’를 남겨주셨습니다. 당신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우리를 위해 직접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이 되어 주신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길만 충실히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의 뜻과 가르침에 맞는 것이라면 ‘예’하고 따르고, 그분 말씀과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아니요’하고 단호하게 끊어내면 됩니다. 구원의 길은 어렵지만 복잡하지 않습니다. 힘들지만 단순한 길입니다. 거북이처럼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주님의 길’만 걷다보면 어느 새 하느님 나라에 다다르게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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