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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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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5)
'성체 성혈의 사랑!'
오늘 복음(요한6,52-59)은 이번 한 주간 동안 듣고 있는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 중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 결론은 '예수님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입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6,52) 이 말에 드러나 있듯이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6,53-55.58ㄱ)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5,14) 어제 피정 주제는 '끝까지 사랑하셨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육화와 땀과 수난과 죽음을 통해 전해졌고, 그렇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극진하고도 완전한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표징이 바로 '성체 성혈의 사랑'입니다.
어제는 이 사랑을 묵상했고, 오후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의 보고'인 '창녕 우포늪'을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여러 번 갔던 곳인데, '우포늪 해설사'로부터 해설을 들으면서 걸으니 참으로 새로웠고, 여러 마리의 따오기도 만났습니다.
피정 마지막 날인 오늘 주제는 '그들의 눈이 열려'입니다. 4박5일 동안 생태영성사제피정을 했으니, 이제 열린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창조질서 보존에 힘써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해지지 않을까?
끝까지 사랑한 하느님의 사랑은 지금도 성체 성혈의 사랑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온 정성과 마음을 담아 이 사랑에 함께 합시다!
이병우 루카 신부
조욱현 신부님_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당신 자신을 “참된 양식, 참된 음료”라고 선포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쾌하게 여긴다. 이는 단순히 인간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성체성사의 신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53절) 이는 단순한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성체 안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체의 위대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지체들이라면, 주님의 식탁에 놓인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곧, 자기 자신을 받는 것입니다.”(Sermo 272) 성체는 단순히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 아니라, 교회를 일치시키고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신비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단순히 ‘빵’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며 그분과 같이 되는 것이다.
성 이냐시오는 성체를 “죽지 않게 하는 약”이라 불렀다. “우리는 하나의 빵을 쪼갠다. 그것은 불멸의 약이며, 죽음을 피하게 하는 해독제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음식이다.”(Ad Ephesios 20,2) 성체를 영하는 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사건이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성찬례의 희생은 온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다.”(11항) 교리서는 성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성체는 온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다.”(1324항) 즉,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성체로부터 시작하여 성체로 나아간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곧, 그분과 운명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성체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된다(56절). 따라서 성체는 단순히 개인적인 영적 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일치,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실현하는 성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체를 단순한 ‘의무’로 영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감사와 사랑으로 받아 모셔야 한다. 성체는 우리의 영적 생명을 지탱할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마저 부활로 이끌어 줄 보증이기도 하다.
성체는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이며, 교회의 핵심이고, 우리가 영원히 살도록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다. 성 이냐시오의 말처럼 성체는 “불멸의 약”(Ad Ephesios, 20,2)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성체를 통해 우리는 곧 자기 자신을, 곧 교회의 신비를 받아 모신다(Sermo 272). 이 신비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교회와 일치하며,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간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된 양식을 받아 모신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성체와 성혈
이번 주 내내 우리는 요한복음 6장을 읽으며 ‘생명의 빵’을 묵상하고 있으며, 오늘 말씀은 이 단락의 결론에 해당하는 ‘성체성사 설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프로테스탄 성서학자들은 이 본문을 비유적, 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가톨릭교회의 성체성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품으로 봅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행위처럼 예수님과 하나 되는 행위, 실제적 행위이어야 한다는 해석으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로써 만족한다면 성경 본래의 의미를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선 본문에 나오는 ‘먹다’와 ‘마시다’라는 표현 자체가 구체적으로 먹고 마시는 행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살’과 ‘피’를 동시에 언급한다는 것은, 셈족의 사고 속에서는, 인간 구성 요소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 요소를 따로 떼어 언급한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 곧 성사적 의미 안에서가 아니라면 결코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먹고 마시는 행위 안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는 분과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는 신적 기원을 지니신 분이며, 그분을 통해서 인간은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고, 그분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복음저자 요한은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똑같이 살과 피를 지니신 분임을 분명히 하면서, 따라서 그분의 살과 피는 구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머묾에 관한 내용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예수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셔야 함을 천명하십니다. 하느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런데 그 머묾이 먹과 마심을 전제로 한다면, 성체성사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빛날 뿐입니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을 부여받은 가톨릭 신앙인들이며, 성체성사를 통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신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며 하느님 안에 머무는 행복을 선사 받은 사람들입니다. 더욱 자주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성체를 모시며 주님과 하나 될 것을 다짐하고, 이 다짐을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삶으로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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