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5일 (토)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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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2026년 가해 부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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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4-24 ㅣ No.189266

개신교에서는 말씀이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던데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요한 6,52)라며 격론을 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의 개신교 형제들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비유이지, 진짜 그분의 몸을 먹으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말씀이 곧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주장합니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Logos)이 육신이 되셨으니, 말씀을 먹는 것이 곧 살과 피를 먹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인식의 누락'이 있습니다. 말씀은 '작동 원리'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작동 원리라도 그것이 내 안에서 실제로 가동되려면 '에너지'와 함께 그 작동 원리를 지닌 이가 '실제로 먹혀야' 합니다. 오늘은 이 '먹힘'의 신비가 어떻게 우리를 하느님의 시스템으로 재창조하는지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어떤 기계가 만들어질 때, 그 기계 안에는 설계도에 따른 '작동 원리'가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에 작동 원리가 적용되려면 땀과 에너지를 쏟으며 그 작동 원리대로 기계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인 진리(법칙)가 내 삶을 바꾸려면, 성령(에너지)이라는 빵과 함께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야 합니다. 땀 흘리지 않는 설계도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듯, 먹히지 않는 말씀은 공허한 관념일 뿐입니다. 생물학의 『세포 내 공생설』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먹었을 때, 세포는 단순히 간식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상위의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통째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게 에너지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세포의 생존 방식을 '산소 호흡'이라는 고효율의 법칙으로 바꿔버립니다. 물론 세포도 미토콘드리아에게 먹힙니다. 내가 죽지 않고는 그분이 내 안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에게 자신의 자원을 기꺼이 뜯어 먹히는(순종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때, 비로소 세포는 수십 억 년을 버틸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출처: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마찬가지입니다.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보십시오. 정자는 난자에게 먹힙니다. 하지만 정자가 가지고 온 것은 단순히 단백질 덩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태아로 성장하라'는 새로운 작동 원리(유전자)입니다. 난자가 정자의 그 강력한 생명 에너지에 삼켜져 자기 복제를 시작할 때, 고작 한 달짜리 난자의 운명은 '인간'이라는 장엄한 시스템으로 격상됩니다. 정자가 난자 밖에서 "너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백만 번 외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실제로 정자가 난자 안으로 '먹혀 들어가야' 그 법칙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정자는 난자를 먹으며 새로운 작동원리를 제공하여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출처: 스콧 길버트, 『발생생물학』) 자녀가 성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구축해 놓은 '성장 시스템'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이유는 자녀가 부모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습니다. 모유는 엄마의 피와 살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뜯어 먹면서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엄마의 언어, 엄마의 도덕, 엄마의 생활 방식입니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늑대 소년'들이 결코 인간의 행동 방식을 닮을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젖을 먹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새로 태어나게 만들려면, 상위 존재가 하위 존재에게 진짜로 '먹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시간과 건강과 감정을 뜯어 먹히는 그 처절한 희생(에너지)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작동 원리(진리)'가 자녀의 영혼에 이식되는 것입니다. 이 '먹힘과 재창조'의 신비를 인류 문화사에서 가장 완벽하게 그려낸 작품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수용소라는 죽음의 시스템 속에서, 아버지 귀도는 아들 조슈아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양식으로 내어줍니다. 조슈아가 그 끔찍한 수용소를 '1,000점을 따면 탱크를 받는 게임'이라는 즐거운 세상으로 믿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귀도가 아들에게 "이건 게임이다"라고 말(말씀)만 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귀도는 그 말을 아들이 믿게 하려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배고픈 아들에게 자신의 빵을 몰래 떼어 먹였고(살), 공포에 질려 울음이 터지려는 순간에도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을 하며 웃음을 주었습니다(피). 조슈아는 매일 아버지의 희생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뜯어 먹히며 만들어준 그 '사랑의 에너지'가 있었기에, 조슈아는 아버지의 '게임 시스템(진리)'에 기쁘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귀도가 마지막에 총살당하러 끌려가면서도 윙크를 보냈을 때, 조슈아는 그것을 슬픈 죽음이 아니라 게임의 완벽한 피날레로 받아들였습니다. 조슈아는 아버지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절망의 땅에서 유일하게 희망의 시스템으로 살게 된 '부활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먹혔기에 아들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출처: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인생은 아름다워' 1997) 예수님은 어떻게 그토록 완벽한 하느님의 아들로 사셨을까요? 그분 또한 '먹는 신비' 안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당신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결국 양식과 뜻은 함께 들어옵니다. 뜻을 실천하지 않으면 양식도 끊깁니다. 아드님은 세례 때부터 아버지의 성령(에너지)을 전적으로 받아드셔(먹어), 아버지의 시스템(뜻)에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먹힌 상태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시스템'을 우리에게 적용하려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우리에게 '먹히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개신교의 주장처럼 말씀이 살과 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우리 영혼의 뼈와 근육이 되게 하려면, 그 말씀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체라는 형상으로 우리 안에 '실제로' 씹히고 소화되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 그리스도의 신성한 유전자가 우리 영혼의 핵으로 침투하여 우리의 낡은 '인간 시스템'을 먹어치우고 '하느님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먹히지 않는 말씀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는 아이에게 밖에서 ‘너는 인간이다.’라고 외지는 말은 그 아이를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원리는 세상의 질서 속에서도 유효합니다. 위대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지식(말씀)만 주지 않습니다. 앤 설리번 선생님은 짐승처럼 날뛰던 헬렌 켈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평생을 뜯어 먹혔습니다. 헬렌이 물건을 던지면 온몸으로 맞았고, 헬렌의 손바닥에 수만 번의 글자를 새기느라 자신의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헬렌 켈러가 비로소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 것은 설리번이 가르친 단어 덕분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기꺼이 먹히고 있는 설리번의 '희생의 에너지'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설리번의 포옹이 사랑이라고 느꼈다면, 그 사랑이란 말씀은 그 안아줌의 먹힘을 통해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먹히는 존재를 찾아야 합니다. 그가 더 위 시스템이고, 그를 먹으면 그의 시스템에 합류하여 그가 사는 것처럼 살게 됩니다. (출처: 헬렌 켈러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 개신교 형제들이 말씀이 살과 피라고 할 때, 기쁘게 웃으며 답해주십시오. "맞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진짜 피가 되어 돌고 살이 되어 움직이려면, 그 말씀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제 자아를 먹어치우도록 제가 그분을 영성체로 모셔야 합니다." 세상의 빵은 내 위장을 채우고 썩어 없어지지만, 그리스도의 살은 내 영혼을 점령하여 나를 영원히 살게 합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의 자원을 먹고 대신 빛과 열을 내주듯, 여러분이 모시는 성체가 여러분의 이기심을 먹게 하십시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제7권에서 주님의 음성을 이렇게 기록하며 성체성사의 본질을 선포했습니다. 

"나는 성인(成人)들의 음식이다. 자라나라, 그러면 나를 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보통의 음식처럼 나를 너의 것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네가 나에게로 변화될 것이다." (St. Augustine, Confessiones, 7, 10, 1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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