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 |
|---|
|
한국에서 맛집을 다니곤 했습니다. 이름하여 ‘원조’입니다. 신당동 떡볶이에도 원조가 있고, 장충동 족발에도 원조가 있고, 의정부 부대찌개에도 원조가 있습니다. 종로의 닭 한 마리에도 원조가 있고, 교대 곱창에도 원조가 있고, 광장시장 빈대떡에도 원조가 있습니다. 원조 집은 늘 사람이 붐비기 마련입니다. 비록 집이 낡았어도, 비록 주차 공간이 좁아도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 집이 있기에 옆에 있는 음식점도 낙수효과를 누리기 마련입니다. 음식의 맛에 큰 차이가 없기도 하고, 바쁜 현대인은 기다리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원조의 입맛에 익숙해진 어른들은 기꺼이 원조 맛집을 찾지만, 인공 감미료에 익숙한 세대는 원조의 맛은 심심하다고 좀더 자극적인 맛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제가 가끔 가는 평양냉면 집도 그렇습니다. 저는 삼삼한 것이 좋은데 후배 신부님은 그냥 그렇다고 합니다. 오히려 색다른 맛을 찾아서 다른 평양냉면을 찾기도 합니다. 뉴욕에 있을 때도 가끔 맨해튼엘 가면 ‘큰집’이라는 원조 한식집을 가곤 했습니다. 교회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라는 4 복음서를 남겨 주었습니다. 어쩌면 이 4 복음서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한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원조 복음 이외에 다양한 복음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도마복음이 있었고, 베드로 복음, 유다 복음, 마리아 복음도 있었습니다. 교회의 교도권은 여러 복음서 중에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4 복음서 중에서 굳이 원조를 이야기한다면 마르코 복음이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조 평양냉면이 삼삼하듯이, 다른 복음서와 달리 마르코 복음은 마태오 복음처럼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도,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도 없습니다. 루카 복음처럼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마리아의 노래도 없습니다. 요한 복음처럼 말씀에 대한 찬가도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처럼 참된 행복에 대한 선포도 없고, 루카 복음처럼 돌아온 탕자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도 없고, 요한 복음처럼 착한 목자 이야기도 없습니다. 마르코 복음의 핵심은 3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도 간결합니다. ‘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입니다. 마치 원조집의 조리법을 다른 맛집이 따라 하듯이 마르코 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기적과 표징은 다른 3 복음서에도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마치 원조집의 맛에 색다른 맛을 내듯이 다른 3 복음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가지 사명을 주십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마귀를 쫓아내는 것, 병자를 고쳐 주는 것입니다. 마치 원조집 근처에 새로운 맛집이 생겨나듯이 다른 3 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풍요롭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엠마로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제자 이야기도 있고, 베드로 사도에게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묻는 이야기도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힘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두려움에 숨어 있던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제자들은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였고, 순교로 신앙을 완성하였습니다.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우리의 상황에 맞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이야기했듯이 21세기의 복음은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고 보존하는 복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던지려고 했던 남성들로부터 부정한 여인을 보호하고 용서하셨듯이 21세기의 복음은 성, 직업, 신분, 이념, 세대,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는 평등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주셨듯이 21세기의 복음은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복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아는 사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용서로, 희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