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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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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5대째 가톨릭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1달이 안 되어서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생과 함께 첫영성체를 하였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물고기가 물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교회는 제게 마치 물고기가 살아가는 물과 같았습니다. 어르신들은 ‘본명’을 불러주었습니다.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은 ‘재형’이지만 저의 본명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언젠가 천상에서 부를 본명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연도는 자연스러운 기도였습니다.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두 가지를 물려 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으로 이루어진 영혼의 이름입니다. 어려서는 이런 가정환경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 몰랐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야 신앙 안에서 살지 못했던 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같이 입학한 형 중에는 예비역이 많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왔고, 일반 대학을 나왔고, 직장 생활하다가 신학교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어찌 그리 먼 길을 돌아왔는지 물어보면 하느님을 늦게 만났다고 합니다. 세례를 늦게 받았다고 합니다. 형들은 그래서 더 감사하며 신학교에서 지냈습니다. 늦었기에 더 열심히 사목하였습니다. 요즘 우리는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을 수학적인 공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리적인 법칙으로 알아내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수학적인 계산으로 답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물리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도 물어보십니다. ‘여러분들도 내 곁을 떠날 것입니까?’ 베드로 사도는 대답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았습니다. 스테파노 부제, 바오로 사도, 신앙의 선조들은 이런 삶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분들에게 물리적인 방식의 영원한 생명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수학적인 방식의 영원한 생명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나간 날을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지도 않은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충실한 삶이 과거가 되는 것이고, 지금의 행복한 삶이 미래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한 삶은 신앙 안에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과 갈망이 만나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건들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에게 보내주는 자매님이 있습니다. 귀찮은 일입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을 몇 년째 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의 사랑과 갈망은 굶주리고, 병들어가는 이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고 있습니다. 물리학적인 시간, 생물학적인 시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순간을 말씀 안에서 충실하게 사는 사람은 신앙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끝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그 끝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감사하십시오. 매일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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