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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오늘의 말씀(4/19) : 부활 제3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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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독서 : 사도 2, 14. 22ㄴ-33 * 제2독서 : 1베드 1, 17-21 * 복음 : 루카 24, 13-35 *<오늘의 강론> 오늘은 부활 3 주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오순절 날에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한 설교의 일부입니다. 이 설교에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고”(사도 2,24), 예수님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신 분”(사도 2,28)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신 분”(사도 2,28)이십니다. 오늘 <화답송>에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나이다.”(시 16,11 참조)
<제2독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약 30년이 지난 후, 베드로가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주셨습니다.”(1베드 1,21)
<복음>은 예수님 부활의 모습을 드러내주시는데,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엠마오로 가고 있는 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희망을 잃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이전의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루카 24,15-16). 혹 우리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눈이 가리어”라는 말은 우리가 아무리 알아보려고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해주시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건네십니다.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루카 24,17) “무슨 일이냐?”(루카 24,19)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요한 20,25)
그렇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믿었던 일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앎과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곧 ‘그분이 죽었다’는 앎에서 벗어나고, 그분께 걸었던 믿음이 무너져버린 일에서 벗어나고, 다시 알아듣고 새로이 믿어야 할 때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이렇게 말합니다. "21세기의 문맹자는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지(learn, unlearn, and relearn)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이미 ‘배운 것’, 이미 ‘아는 것’을 비워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말씀’을 통해 깨우쳐주십니다.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루카 24,27),
그들은 “마음이 타오르게”(루카 24,32) 되었으나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는 못한 채 말합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루카 24,29).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식탁에 앉으셔서, 빵을 들어 떼어 나누어주시며”(루카 24,30 참조) 사랑으로 응답하십니다. 그 깊은 사랑이 그들의 어둠을 비추시니,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루카 24,31). 이는 마치 ‘말씀의 전례’로 마음이 타오르고, ‘성찬의 전례’로 말씀이신 분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실 때에”(루카 24,35) 그분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떼어내다’는 단어는 ‘분리하다’, ‘파괴하다’, ‘으스러뜨리다’라는 의미의 동사라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으스러뜨리고 부수심으로 당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신비, 곧 부활의 신비를 보는 눈은 이 ‘떼어냄’, ‘부수어짐’, ‘으스러뜨림’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활도 우리의 생명을 으스러뜨리고 부술 때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생명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곧 우리가 부서지고 으스러뜨려질 때, 우리는 그분 안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생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1-3)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꼭 붙드시고, 참으로 감동적으로 우리를 동행하십니다. 깊고 깊은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스스로 그분의 손을 빠져나가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에서 당신 ‘말씀’으로 마음이 타오르고, 마음의 눈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과 부활생명을 보는 눈이 열려,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뿜어 나르는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6)
주님! 곁에 함께 걸으시건만, 당신을 알아 뵙지 못한 저를 용서하소서! 길동무가 되어 주시건만, 곁에 없는 것처럼 무시하였음을 용서하소서! 이제는 뼈 속 깊이 계시고 심장에 살아계시며, 발등에 등불이신 당신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함께 걸으시는 당신의 인도를 따라 걷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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