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9일 (일)
(백) 부활 제3주일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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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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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07:42 ㅣ No.189180

[부활 제3주일 가해] 루카 24,13-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오늘 부활 제3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를 찾아가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뵙고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미사에 참여하여 영적으로 성장해가는 우리 모습과 닮아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복음말씀을 미사의 각 부분과 연결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일 먼저 ‘입당’입니다. 입당은 말 그대로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주님께로 옮기는 것이지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세속적인 성공이라는 관점으로 주님을 보았기에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보고 슬픔과 절망에 빠졌지만, 이를 주님의 관점으로 보면 절대 실패가 아닙니다. 주님은 힘과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능력이 아니라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나의 믿음, 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주님의 믿음이, 우리를 위한 그분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깨닫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의도와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나의 뜻을 모두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두번째는 말씀의 전례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그분 뜻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겠지요. 그 방법은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남의 이야기’로 읽으면 그 어떤 깨달음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하느님께서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들이라 믿고 읽어야 그 말씀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따르는 데에 ‘마음이 굼뜨지 않게’ 되지요. 또한 성경을 읽을 때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 핵심주제는 총 세가지 입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겪으신 뒤에야 당신 영광 속에 들어가신다는 것. 둘째, 모세오경에서 시작하여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기록은 공통적으로 하느님 뜻에 철저히 순명하여 고통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심으로써 마침내 참된 영광을 누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 셋째, 그러니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현상이나 결과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 주님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이 점을 깨우쳐주셨고, 이런 깨달음을 통해 두 제자의 마음은 비로소 성경에 담긴 참뜻을 알게 된 감동으로, 더 나아가 자기들이 깨달은 그 말씀을 어서 빨리 삶 속에서 실천하고 싶은 열망으로 뜨겁게 타오르게 되었지요.

 

그런 뒤에 주님께서는 두 제자와 함께 조촐한 식사 자리를 마련하십니다. 세번째 단계인 성찬의 전례입니다. 그 자리에서 두 제자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자기들에게 나누어주시는 모습을 보고 “눈이 열려”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눈이 열린 것은 식사 때가 아니었습니다. 숙소까지 예순 스타디온, 약 11.2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걷는 동안 내내 계속되었던 “말씀의 전례”를 통해 하느님 말씀에 담긴 참된 의미를 깨닫고, 그 말씀을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기에 눈이 열린 겁니다. 주님은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려면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요. 두 제자의 마음이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감동으로,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거워져있지 않았다면 ‘말씀이신 그리스도님’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성찬의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주님이 성체를 통해 내 안에 들어오시는데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평소에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니,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며 실천함으로써 마음의 눈을 주님께로 활짝 열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파견입니다. 성찬의 전례를 통해 겨우 자기들과 함께 계신 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러자마자 주님께서는 두 제자 앞에서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주님께서 그들 곁을 영영 떠나버리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 제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요. 주님은 눈으로 볼 수 없어도 언제나 내 안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기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신 것은 자기들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주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할, 그리고 말과 행동으로 주님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해야 할 중요한 ‘소명’이 맡겨진 것이라는 점을… 그래서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 한 제자에게 자기들이 겪은 ‘부활’을, 자기들이 보고 듣고 느낀 주님 모습을 전하게 됩니다. 그 점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미사를 마치면서 사제를 통해 하느님의 ‘강복’을 받는 것은 천주교 신자라서 ‘특혜’를 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미사 안에서 듣고 깨달은 주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널리 선포하라는, 주님의 몸을 받아모신 복된 사람답게 세상 안에서 행동과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라는 중요한 소명을 잘 수행하라고 힘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소명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한밤 중에 밖에서 위험에 처할까봐 염려되어 자기들과 함께 묵자고 붙들었던 두 제자처럼,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과 자비를 작고 약한 이들에게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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