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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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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을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이해와 용서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할 수 있고 믿어 줄 수 있습니다. 오해와 원망의 관점에서 보면 오해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미움과 불신의 관점에서 보면 미워할 수 있고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순과 대림에 특강을 다닐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강을 준비하면서 힘이 들지만 보람도 많았습니다. 특강을 준비하는 마음을 알기에 본당에서 특강이 있으면 꼭 귀담아들으려고 합니다. 지난 사순 특강을 들으면서 모든 것이 성모님께서 준비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알코올중독인 본당 신부님을 만나서 힘이 들었지만, 그로 인해서 본당의 사목을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을 못 하게 하는 본당 신부님을 만나서 힘이 들었지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운 영어로 나중에 뉴욕에서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 모든 것이 성모님께서 준비해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신부님이 메주고리예에 다녀와서 회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랐다고 합니다. 교우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사랑이 넘치는 신부님이 회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더 많이 기도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랐다고 합니다. 신부님만큼 기도하는 분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기의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던 신부님을 하느님의 도구로 불러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파트 베란다에 비둘기가 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파트 관리인은 몇 년 동안 근무하면서 비둘기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이사 오면서 비둘기가 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비둘기를 보았고, 메주고리예로 순례를 갔다고 합니다. 메주고리예에서 사람들의 모습에 놀랐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손에 묵주를 들고 다녔고, 얼굴에 빛이 났다고 합니다. 마음이 변했기 때문에, 회개했기 때문에 그것이 얼굴로 드러난 것이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성당에서 성서를 읽었다고 합니다. 마태오 복음을 읽는데 3장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왔고, 하늘에서 ‘이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비둘기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성모님께서 비둘기를 보내 주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때부터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의 모후 사도회’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특강과 함께 묵주기도와 성시간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성시간이 끝나면서 정성스럽게 ‘안수’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을 만나셨고,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을 때입니다. 제자들은 벅찬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신부님이 인도하는 묵주기도, 성시간에서 교우들은 영적인 위로를 받았습니다. 신부님이 정성껏 안수해 줄 때 교우들은 치유되었습니다. 그 안수는 마치 두려움으로 물에 빠지던 베드로에게 내밀던 예수님의 손과 같았습니다. 제게도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은혜로운 특강이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특강을 해 주었던 신부님도 세례명이 ‘스테파노’였습니다. 특강에 함께 했던 분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빵을 배불리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표징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면 빵은 언제든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은 지금 당장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나’를 먼저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아들이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 부활하셨다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 위에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온갖 박해와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여러분이 믿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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