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8일 (토)
(백) 부활 제2주간 토요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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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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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4-17 ㅣ No.189143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요한 6,1-15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적은 양의 음식으로 수천명이나 되는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장면입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이 장면을 예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자 구세주이심을 드러내는 ‘기적’으로 부르는 반면,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는 이들로하여금 특별한 깨달음을 얻게 하여 마침내 참된 믿음으로 이끄는 ‘표징’이라고 부르지요.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그리고 오늘 복음을 읽는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은 당신의 큰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시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에서처럼 빵과 물고기를 제자들을 시켜 나눠주시지 않고 예수님께서 직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눠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광야를 헤매던 자신들에게 ‘만나’라는 음식을 내려준 이가 ‘모세’라고 오해했던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시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당신의 의도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시기 위해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당신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이는 빵의 구입처를 몰라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로하여금 빵을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지, 자신들에게 빵을 주시어 살게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바라보게 하려고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필립보는 이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빵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출처와 근원을 물으시는데,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부족하겠다며 ‘수량’으로 응답한 겁니다. 숫자로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재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드는 인간의 관점이지요. 그 관점으로 바라보면 항상 모든 것이 모자라게만 느껴집니다. 인간은 원래 부족하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걸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하느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순간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분께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충만하게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을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시기 전에 먼저 그것을 손에 들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당신 백성을 배불리 먹이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자기가 가진 소박한 재물을 그분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내어드리는 일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기도하신 후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음식을 나눠주셨는데,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양이 ‘열 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우리를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이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개인적인 탐욕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과 함께 하시며 필요한 것을 충만하게 채워주시지만, 당신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이들은 단호하게 떠나시는 분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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