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6일 (목)
(백)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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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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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4-14 ㅣ No.189076

미국은 1년에 두 번 시간을 바꾸고 있습니다. 3월과 11월에 시간을 바꾸는데 이것을 ‘Daylight Saving Time(일광절약시간)’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Summer Time’이라고도 부릅니다. 저도 미국에 온 지 어느덧 8년이 되었고, 그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계의 바늘이 한 시간 앞으로 가기도 하고, 다시 뒤로 가기도 합니다. 시간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시간에는 서로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서는 시간을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크로노스는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달은 30일이며, 1년은 365일입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준으로 정해진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부자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하루는 24시간입니다. 젊은 사람에게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침이 오면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이 되면 하루를 마칩니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의 삶도 함께 흘러갑니다.

 

하지만 성서는 또 다른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카이로스, 의미의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는 결혼기념일이 있습니다. 서품 기념일이 있습니다. 축일이 있고 생일이 있습니다. 은경축이 있고 금경축이 있습니다. 이런 날들은 단순히 달력에 적힌 날짜가 아닙니다. 그날에는 우리의 삶을 바꾸었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날을 떠올리면 감사가 떠오르고, 기쁨이 떠오르고, 때로는 눈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람은 바로 이런 의미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동물들은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종족 보존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의미의 시간을 통해 문화와 역사와 예술과 철학과 종교를 만들어 갑니다. 어떤 사람은 그 의미의 시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의미의 시간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기도 합니다. 어쩌면 종교도, 그리고 부활 신앙도 바로 이런 의미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들은 대사제들과 사두가이파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사도들은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고, 다시 성전에 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도들이 전하는 진리를 두려워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힘은 언제나 두려워합니다. 부당한 권력은 언제나 떨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잡아 가두고, 침묵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권력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던 힘도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박해와 멸시를 받았던 사도들은 2000년 교회의 역사 속에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밝혀주는 빛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 차이입니다. 권력과 힘은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랑과 진리는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영원히 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권능과 힘을 가지셨지만, 그 힘을 사랑을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십니다.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이 있을 때, 능력이 있을 때, 재물이 있을 때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사랑과 희생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시계는 돌아가고 하루는 지나갑니다. 그러나 그 하루가 사랑과 진리로 채워진다면, 그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담긴 카이로스의 시간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는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카이로스 안에서는 구원의 순간이었고 부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도들의 감옥 생활도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는 고통이었지만, 카이로스 안에서는 복음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는 그냥 지나가는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은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바로 이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느님의 의미를 발견하는 삶, 평범한 하루를 은총의 시간으로 바꾸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하루가 단순히 지나가는 크로노스의 하루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카이로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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