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3일 (월)
(백)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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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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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52 ㅣ No.189062

조욱현 신부님_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라고 말씀하신다여기서 ‘위로부터’(ἄνωθεν)는 하느님한테서 오는 새로운 창조를 의미한다이는 인간의 노력이나 혈통이 아니라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탄생이다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로 다시 태어난다성령 안에서 새로운 인간이 되고하느님의 자녀가 된다.(Adversus Haereses III,17,1)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개선이 아니라존재 자체가 성령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5여기서 “물과 성령”은 곧세례성사를 가리킨다세례는 단순한 상징적 의식이 아니라죽음과 부활새로운 피조물로의 탄생을 이루는 성사다성 바실리오는 세례를 이렇게 설명한다“물은 죽음을 상징하고성령은 생명을 준다우리가 물속에 잠길 때 옛사람이 묻히고성령으로 다시 일어날 때 새사람이 되어 부활한다.(De Spiritu Sancto XV,3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6육에서 태어남은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한계와 죄의 결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이다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묵상한다“육은 육만을 낳고영은 영을 낳는다첫 번째 탄생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주지만두 번째 탄생은 죽을 수 없는 삶을 준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1,6) 따라서 신앙인은 단순히 혈통이나 인간적 조건이 아니라성령의 은총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만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너희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8이는 성령의 자유와 신비를 드러낸다성령께서는 인간의 계산과 조건을 넘어원하는 사람에게 자유롭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이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풀이한다“성령은 어떤 법칙이나 한계에 매이지 않으신다그분은 자유롭게누구에게나언제나그리고 놀랍게 역사하신다.(Homiliae in Ioannem 25,2)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이미 “위로부터 난 사람”이 되었다이제는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우리가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길 때비로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다시 태어남

 

부활의 신비를 깊이 있게 묵상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 매우 유익합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지상의 현실을 받아들여 사람이 되시었어도, ‘하느님의 나라’에 이르는 신앙의 여정을 통하여 언제나 이 현실을 극복하도록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활시기 내내 주일과 평일 복음 말씀으로 읽고 묵상하도록 요한복음을 택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우리는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과 니코데모 사이의 대화를 접합니다. 니코데모는 바리사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어서 최고 의회 의원으로 소개됩니다. 나아가, 문맥으로 보아 바리사이 이상으로, 수년간의 정규적인 연구 과정을 거쳐, 율법은 물론 종교법과 형법에 대해 독자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율법 학자였던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지도층 인사였습니다.

 

신앙적으로 경건하고 사회적으로 지도자 위치에 있던 니코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밤시간을 택한 것은 식견 있는 지도자로서 타인의 이목이 신경 쓰였거나, 아니면 밤시간을 이용하여 예수님과 오랫동안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예수님이 행하신 표징들은 아무도 일으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 니코데모는 고백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지도자가 토해내는 고백치고는 놀랍기만 합니다.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거나, 아니면 멀리서나마 보고 들어서 그러한 확신을 가슴에 담고 있었기에, 이분이 진정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인지 직접 뵙고 대화를 나눌 시간을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지도층 인사였으면서도, 매사에 편견이 없고 사리가 깊은 인물임을 대변해 줍니다. 훗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니코데모의 모습은 이러한 우리의 확신을 더해줍니다(요한 7,45-52; 19,39).

 

예수님의 대답은 상호 유사한 내용으로 나란히 주어집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와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는 두 가지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이시기에, 그분만이 하느님이 다스리는 나라, 곧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보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하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보기’와 ‘들어감’과, ‘위로부터’와 ‘물과 성령’이 동일선상에 있는 표현들이며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제대로 보고 그 나라에 차질 없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위로부터 곧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노력에 앞서 하느님의 능력과 은총이 전제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물과 성령의 성사인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분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거저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으로 거저 태어났다고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쉼 없는 노력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나가야 하는 것처럼,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느님 말씀을 늘 마음에 담고 실천에 옮겨 나감으로써 지상에서의 삶을 다할 때까지 자녀다운 모습을 간직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부활하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그분이 보여주시는 하느님 나라, 그분이 이끄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서기 위해 한 발짝 더 내딛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병우 신부님_"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20,23)

 

'다시 태어남의 신앙!'

 

오늘 복음(요한3,1-8)은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 대화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였고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인 니코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이르십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요한3,3.5-6)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그가 썩어 없어질 육에 머물러 있었고, 보이는 육체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요한3,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태어남의 의미는 '육의 태어남'이 아니라 '영의 태어남,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바로 '위로 태어남'이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태어남'의 의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씻김의 성사인 세례성사를 통해서 묵은 죄와 허물을 말끔히 씻어내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영육의 새로운 탄생인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과 육이 함께 건강해져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 이미 우리 가운데에 와 있는 하느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육에만 갇혀 있지 말고, 영의 새로남을 위해 노력합시다!

 

송영진 신부님-<“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의회 의원이었다.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1-8)>

 

 

 

1) 니코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왔다는 말은,

 

그가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가 ‘빛이신’ 예수님을

 

찾아왔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4.9).”

 

마태오복음서 저자도 이렇게 증언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빛’이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2,46).”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요한 12,35-36).”

 

여기서 ‘어둠’은 ‘죽음’을 뜻하고, ‘빛’은 ‘생명’을 뜻합니다.

 

세례성사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서

 

빛의 자녀가 되는 성사입니다.

 

신앙인은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 빛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어둠 속에서 살다가 예수님 덕분에 새로

 

태어나서 완전히 새롭게 빛의 자녀로 변화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박해자로 살던 때의 그의 삶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삶이었고, 예수님을 만나고, 세례를 받고, 사도가 된 후의

 

그의 삶은 빛으로 가득 찬 삶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활동은

 

자신이 받은 빛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일입니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라는 말씀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는 사람은 먼지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라는 말씀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린다는 뜻입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온 삶을 다하여 믿고,

 

믿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공부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믿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에페 5,8-11).”

 

신앙인은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항상 ‘선과 진실의 편’에 서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그 사람들이 그것에 다시

 

말려들어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들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2베드 2,20).”

 

 

 

3) “그들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루카 11,24-26).”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났으면,

 

주님과 함께, 또 주님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에 세례만 받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한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주인 없는 ‘빈 집’처럼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고, 그러면 악마가 와서 차지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고 싶을 때만 하고,

 

하기 싫을 때는 안 해도 되는 생활이 아니라,

 

날마다 끊임없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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