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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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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을 치료하기 위하여서 치과를 갔다 오고 한달에 한번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서 수도회 신부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확실히 신자들의 공동체는 신부님과 수녀님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운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항상 깨닫게 됩니다. 신자들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고 서로서로를 판단하는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공동체는 경청하여 주시고 인내하여 주시고 사랑하여 주신다는 것이 사람을 살리시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오늘이 자비 주일입니다. 자비를 생각하여 보니 앞서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보여주신 인내하여 주시고 경청하여 주시고 사랑하여 주시는 모습 안에서 사람을 살리시는 주님의 부활 모습과 같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자체가 인간의 영혼의 모습을 완전히 구현하신 모습입니다. 영혼의 구현은 성령과 같습니다. 주님의 부활 사건안에서 오늘 복음에서도 제자들 앞에 주님이 발현하십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으로 보고 주님의 부활을 믿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토마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본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토마에게 말을 건냅니다. 그런데 토마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저보아야지만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8일 되는날 주님이 또 토마 앞에 발현하십니다. 토마야 너의 눈으로 나의 손과 발을 만저 보아라 말씀하십니다. 그제서야 토마가 답을 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더 주님의 다음 말씀을 하십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앞에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는 사람은 주님의 현존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아직도 내 안에 나의 눈과 5감이 존재하고 나의 이성체계가 작동하고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어야 한다고 말한것입니다. 온전히 하느님에게 내어 맡기지 않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보고 듣고 만저 보아야 한다는 것은 완덕의 길에서 능동적인 신앙입니다. 완전한 하느님과 같이 합일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안에서 임하셔서 내 안에서 움직이시는 모습..주님이 내안에서 거 하신다는 것,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자기 이탈이 따라야 하고 영적인 가난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비움이 있어야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당신일을 하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도 믿는 다는 것은 성령께 내어 맡기는 그런 은총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행복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을 곰곰히 묵상하고 주님 품에서 행복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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