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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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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되었을 때입니다. 부활 대축일이 지나면 ‘엠마오’라는 휴식의 시간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순 시기와 성삼일을 지내면서 성직자와 수도자가 수고했으니 며칠 쉬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신부님들이 ‘엠마오’라는 걸 생각했습니다. 루가복음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의 이야기에서 명분을 찾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보았던 제자 둘이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제자 둘은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몰랐습니다. 어쩌면 실망과 절망의 마음을 가지고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엠마오로 가던 제자는 사순 시기를 지낸 것도 아니고, 성삼일을 지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고기를 잡으려고 갈릴래아 호수로 갔던 것처럼, 제자 둘도 자기들이 살던 고향으로 갔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활 대축일 지내고 며칠 휴가를 가는 ‘엠마오’는 사실 성서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오히려 부활 대축일 이후 ‘부활 팔일 축제’를 통해서 부활의 기쁨을 더욱 성대하게 지내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교구는 사제들이 지내는 ‘엠마오’의 관행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교구는 그런 관행이 교회의 정신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공문을 보내서 ‘엠마오’ 휴가를 자제하도록 하였습니다. 휴가를 가더라도 부할 팔일 축제를 마친 후에 가도록 하였습니다. 3년 전에 달라스에 왔을 때입니다. 부활 대축일 이후에 ‘엠마오’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해는 성당 문을 닫았습니다. 작년 부활 대축일 이후에도 ‘엠마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성당 문을 열겠다고 하였습니다. 교우들이 다른 성당에서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우리 집을 두고 다른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부활 대축일 이후에도 작년처럼 성당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관행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먼저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의 관행도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위선이라고 하셨습니다. 겉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나라들은 ‘평화’와 ‘안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갈등이 깊어질수록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도 커집니다. 힘의 논리는 빠르고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늘 약한 이들의 고통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들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길을 여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사제는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세상의 기준입니까? 효율과 편리함의 논리입니까? 아니면 복음입니까? 우리는 사제가 되면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길을 따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분들은 편리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복음을 선택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신앙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저는 때때로 묻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혹시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논리를 따르려는 것은 아닌가? 편리함을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활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래아로 가라.” 갈릴래아는 권력의 중심이 아닙니다. 갈릴래아는 일상의 자리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부활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만 일어나는 사건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두려움을 넘어 용기를 낼 때 부활이 시작됩니다. 미움을 넘어 용서를 선택할 때 부활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복음을 선택할 때 부활이 시작됩니다. 우리도 묻습니다.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세상의 기준인가, 복음의 기준인가?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는 우리는 아직 축제 한가운데 있습니다. 부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부활입니다. 갈릴래아로 돌아갑시다. 우리의 가정으로, 일터로, 공동체로 돌아가 회개하고, 용기를 내고, 복음을 전합시다. 주님은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부활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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