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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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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상 안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자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습니다.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새입니다. 새는 날개가 있기에 하늘을 납니다. 날개가 있는데도 땅 위를 계속 걸어 다닌다면 어딘가 다쳤거나 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땅 위에만 머무는 새는 위험에 쉽게 노출됩니다. 또 다람쥐도 봅니다. 다람쥐는 날 수는 없지만 나무를 자유롭게 오릅니다. 나무 위를 곡예사처럼 달려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새에게는 날개를, 다람쥐에게는 발톱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신앙’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날지 못하고 오르지 못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나무를 오르는 다람쥐를 보며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영적 날개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모든 것이 기쁨이 됩니다. 요즘 인공지능, AI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정부에서도 ‘AI 정부’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한 가지 원칙을 말합니다. 바로 ‘FAIR’입니다. 찾을 수 있어야 하고(Findable),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Accessible), 서로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Interoperable), 다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Reusable)는 것입니다. 아무리 데이터가 많고 기술이 뛰어나도, 그것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열려 있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신앙생활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수도자가 되었고 어떤 분은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다고 자동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제가 되었다고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에도 ‘영적 FAIR’가 필요합니다. 첫째, 내 신앙은 하느님 앞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 알고 주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은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성사를 통해 언제든지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과 이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혼자만의 체험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넷째,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은 이를 위해 ‘의식성찰’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루를 마치며 하느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단순히 잘못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의식성찰은 다섯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감사입니다. “주님, 오늘도 저를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활 신앙의 출발점은 감사입니다.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삶 전체를 감사로 바꾸어 놓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신앙은 쉽게 불평으로 변합니다. 둘째는 하루의 점검입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말했으며 누구를 만났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무슨 생각 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셨듯이, 주님은 오늘 우리의 마음을 묻고 계십니다. 셋째는 잘못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상처를 주며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마음은 점점 닫혀 버립니다. 겸손하게 인정하는 순간 은총이 스며듭니다. 넷째는 용서를 청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배신했던 제자들에게 첫마디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하셨습니다. 용서가 부활의 첫 열매였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여전히 성금요일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용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부활의 아침으로 나아갑니다. 다섯째는 기도입니다. “주님, 내일은 더 잘 살게 해 주십시오.” 의식성찰은 과거를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시간입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새롭게 시작하는 힘입니다. 저 역시 사제로 살아가면서 이 의식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낍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미사를 드리고 회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작 제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목이 돌아가지만 제 안은 메말라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루를 마치며 조용히 주님 앞에 서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오늘 얼마나 부활을 살았는가?” 부활 팔일 축제는 단지 여덟 날의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새에게 날개가 있는데도 날지 않는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있는데도 감사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성금요일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갈릴래아, 곧 우리의 일상으로 부르십니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하느님께 투명하게 열어 놓는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밤 하루를 마치며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오늘 제 안에 부활이 있었습니까? 제가 감사했고 용서했고 사랑했습니까? 내일은 더 부활답게 살게 해 주십시오.” 부활은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오늘 밤 나의 성찰 안에서 시작됩니다. 하루를 하느님께 열어 놓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부활을 사는 사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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