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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신부님(빠다킹신부님)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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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문득 70년대 초등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습니다. 선생님께서 가정 환경 조사를 하셨는데, ‘가족은 몇 명인가?’라고 물어보셨고 여기에 집에 무슨 가전제품이 있는지를 물어 손들게 했습니다. 라디오, 텔레비전, 냉장고, 전화기, 곤로 등등…. 아마 지금에야 거의 다 가지고 있는 가전제품이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가전제품이 없는 집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전제품이 우리 집에는 다 있었습니다. 이때 들은 생각은 “우리 집, 부자구나.”였습니다.
집에 가서 어머니께 “우리 집 부자지?”라고 물었습니다.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상, 중, 하로 따진다면 ‘중’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가전제품이 다 있고,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우리 집이 더 크고 좋았는데도 말입니다.
부는 상대적입니다. 긴 연필 1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긴 연필 2번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더 긴 연필 2번을 보고서, 긴 연필 1번은 ‘나는 작다’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더 긴 연필 2번도 자기보다 더 긴 연필을 보면 ‘나는 작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비교하지 않아야 자기의 행복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바라보고 만족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의 어둠을 이기시고 생명의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안에서 커다란 행복을 깨닫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게 하는 주님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부활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깨닫고 희망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만으로도 세상 안에서 비교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생각하지 않고, 또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 계속 비교하면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 무덤에 갔다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미 세 번이나 당신의 부활을 예고하셨음에도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안 계신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면서 말씀 자체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상징인 수의(아마포)와 얼굴을 쌌던 수건을 무덤에 남겨두셨습니다. 비록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으셨지만, 부활의 흔적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의 기준, 부정적인 생각으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기준, 나의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오늘의 명언: 신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 절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일깨우기 위해 그것을 보낸다(헤르만 헤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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