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Re: 댓글을 달기 보다는 이게 더 낫겠다 싶어 남깁니다. 마르코 형제님

스크랩 인쇄

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02:51 ㅣ No.188885

 

지금 몸살이 심해 처음 글 올라온 것 보고 간단하게만 댓글 남겼습니다. 사실 전부 공감합니다. 주일미사 신자들 수가 준다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 한인교회를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공감하는데 신자들의 기도도 있고 매일미사에 관한 언급 이 두 부분만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공감의 취지로 언급할게요. 

 

처음 신자들의 기도 이건 제가 천주교에서 하는 전례의 일부분이라 정확하게 그 판단을 하는 건 좀 어렵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형제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천주교 신자는 사실 개인기도가 잘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틀에 박힌 기도문으로만 기도하는 게 일반화가 돼서 그런 면도 있습니다. 2000년의 세월 동안 다져지고 다듬어진 기도문이 있어서 정말 화려하고 수려한 면이 있다는 건 절대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최근에 발견한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미사전 기도인데요 암브로시오 성인이 만드신 기도인지는 모르지만 기도문 이름이 암브로시오 기도문이라고 나오긴 했습니다. 일반 미사전 기도문과 비교하면 이것도 다양한 버전으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3년 전쯤에 매일미사 대용으로 평생 소장용으로 독서와 전례 신자용을 구입했습니다. 원래는 네 권만 있으면 되는데 한 권은 특별한 미사를 위해서 사용되는 것 같아 혹시 몰라 한 권을 더 구입했습니다. 이 책 안에 이 기도문이 있는 걸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 기도문을 보고서 생각한 게 앞으로 이 기도문을 바치고 미사를 참례하면 정말 은혜롭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나중에는 이처럼 자기만의 고유기도문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건 일반적인 세상의 표현으로 하자면 문장면에서는 정말 뛰어난 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의 티라고는 할 수 없지만 티라고 굳이 한다고 하면 단 하나가 있습니다. 형제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자신의 이성으로 생각하지 못한 기도문 즉 다시 말해 영혼 없는 남의 기도가 될 수 있다는 맹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약간의 우려 아닌 우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맹점 외에는 아주 좋은 점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어떤 경우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분에게는 아주 좋은 경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람은 다 능력이 저마다 다릅니다. 모든 신자가 다 이런 게 필요 없을 정도로 다 뛰어난 신자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쪽으로 달란트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준한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도 가히 나쁘진 않다고 판단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건 좀 생각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개신교처럼 대표기도 같은 건 아니더라도 평소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기도는 아니더라도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위해 기도를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자유기도는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피정을 했는데 마침 그때 자유기도를 해야 하는 그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사실 다 들어보면 이건 기도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끄러운 기도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화살기도라는 게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원래는 몇 줄만 의견을 피력할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길어지는군요. 또 하나 매일미사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이것도 지금 말씀드린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사실 몇 년 전에 어떤 신부님의 기고문을 봤습니다. 그분은 매일미사 책 폐간을 주장하시더군요. 저는 그때 그 신부님의 기고문을 보고 전적으로 동의를 했습니다. 폐간에 동의를 하는 게 아니고 매일미사의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신 그 부분에 동의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미사 책 자체만을 놓고 보면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걸 신자들이 활용을 제대로 잘 하지 못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신부님은 이 매일미사로 인해 신자들이 말씀을 단편적으로 본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는 좀 더 살은 붙인다면 요즘 현실을 보면 매일미사는 그냥 미사 때만 보는 말씀으로 전락한 게 현실입니다. 

 

요즘에는 앱도 있기 때문에 매일미사를 구입하는 게 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앱과 상관없이 이제는 또 매일미사 자체를 구입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금부터 언급하는 건 엄청나고 심각한 교회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그 이유를 언급하겠습니다. 말씀과 그렇게 친하지 않으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잠시 미사때만 보는 용도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있어도 볼까 말까 하는 판국에 없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습니까? 그냥 미사 예절은 다 알고 있으니 가서 그대로 하는대로 하기만 하면 미사 참례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된다고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사실 무지의 소치입니다. 이건 미사 전례가 단순히 성전에 가서 몸만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하는 동작과 기본적으로 우리가 응송을 하는 그런 걸로 이게 온전한 미사라고 생각하고 또 최종적으로 영성체만을 하면 그게 완전한 미사의 은총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미사에 관한 전문적인 책을 공부한 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합니다만 그 책에 나와 있는 걸 보면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뭐냐 하면 말씀인 독서와 복음을 잘 연구하지 않고 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실은 반쪽짜리 미사도 안 됩니다. 불완전 미사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영성체까지 하면 그 영성체도 제대로 된 영성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걸 신학적으로 설명을 했는데 정말 맞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는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설명은 생략을 하겠습니다. 제가 신자이기 때문에 그 선을 넘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렇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강론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에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게 또 다른 교회 문헌에도 나오는 게 있는데 제가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어디서 봤는지 하지만 복음의 기쁨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판단하면 실제 강론은 복음을 언급해야 합니다. 사실 이게 어느 정도까지 언급을 해야 복음을 언급했다고 하는 기준은 없긴 하지만 문헌과 교황님의 저서를 통합해 생각한다면 복음의 스토리를 잘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신자들이 그 맥락과 전체를 알게 된다면 그런 게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일반 신자들은 신부님들만큼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대신해 주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강론에서 복음과 전혀 관련 없는 내용으로 세상 일을 가지고 언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나마 어떤 경우는 복음에 나오는 한 구절 정도 언급하면 다행일 정도입니다. 복음의 한 구절을 언급하는 정도로 그날 강론에 대해 복음을 서술했다고 하긴 조금 창피한 내용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교회가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천주교에서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며 문제점 아닌 문제점을 하나 언급한다면 시간 상의 제약도 있지만 우리는 복음을 이해할 때 단순히 복음 그 부분만 한정해서 이야기합니다. 구약과 연결해 언급하는 것은 거의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딱 한 번 제가 옆 본당에서 한 번 미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마 몇 년 전 사순 때인 것 같습니다. 그 본당 신부님 신학교 동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소개를 하긴 했는제 부산교구에서 오신 손님 신부님이었습니다. 그날 강론에서 인상적인 게 복음의 한 구절을 원어로 설명을 하시면서 구약을 매치하셨습니다. 제가 그날 처음으로 천주교로 개종해서 그것도 그렇게 세세하게 구약과 복음을 매치해서 강론을 들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개신교도 그 정도까지는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때 그 강론에 대해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서 제 묵상글에도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천주교 신자는 말씀을 잘 안 본다고 하기 이전에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교회도 반성을 해야 합니다. 정말 성경을 유기적으로 잘 매치해서 강론을 하게 된다면 말씀이 주는 미묘한 즐거움이 있을 텐데 교회가 그런 걸 제공하지 못하니 신자들이 말씀의 매력을 못 느낀다면 그건 교회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건 정말 교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신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형제님, 원래는 단 몇 줄만 언급하려고 했는데 길어졌습니다. 또 제가 지금 컨디션만 좋다면 아마 더 언급했을 텐데 제가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하긴 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묵상하게 계기를 만들어주신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댓글만 보다가 이렇게 글 올려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 



13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