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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4월 2일 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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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 주님 만찬 성목요일 [말씀] ■ 제1독서(탈출 12,1-8.11-14) 문설주에 발린 파스카 희생양의 피는 주님께 대한 히브리인들의 믿음과 순명을 드러내며, 죄인에게 내리 닥칠 징벌로부터 그들을 구해줄 표지가 될 것입니다. 또한 가족 단위로 매년 새롭게 거행하는 희생양 섭취는 이집트 종살이로부터의 해방의 밤을 기억하는 의식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 제2독서(1코린 11,23-26)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당시 코린토 교회에서 거행되던 성찬례를 전해줍니다. 신약성경에서 성찬례에 관한 언급은 네 차례 발견되는데, 복음서(마태 26,26-30; 마르 14,22-25; 루카 22,14-20) 이외에 유일한 경우가 오늘 독서입니다. 그러나 저술 시기로 본다면, 코린토 1서가 다른 복음서들을 앞서기에 성찬례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일찍부터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해 왔고, 성체를 받아 모시며 일치의 삶을 다져 왔습니다. ■ 복음(요한 13,1-15) 예수님을 생명의 빵으로 그토록 강조해왔던 복음저자 사도 성 요한은, 다른 복음저자들과는 달리, 성찬례 기사를 보도하지 않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 기사로 대체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이 다스리는 왕국을 예고하신 그리스도의 몸짓은, 표현 방법을 달리하여, 미사성제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주님은 참된 파스카의 성격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새김] 오늘부터 가톨릭 전례의 핵심인 성삼일에 들어갑니다. 그 첫날인 오늘, 성목요일, 예수님은 체포되시기 직전, 수난과 죽음의 길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디시기 직전,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최후 만찬, 마지막 저녁 식사를 나누시던 중에 당신의 몸을 영적인 양식, 생명의 음식으로 내어주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이 밤에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함께 재현하며 기립니다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누어주신 한 조각의 빵, 한 잔의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라니 참으로 알아듣기 힘든 일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눈여겨 읽어보아도, 어떻게 해서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신앙인들은 그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 때문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전체가 바로 그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의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 속에는 주님의 사랑과 생명이 흘러넘치도록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먹고 주님의 사랑을 마시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빵은 바로 당신의 몸이었으며, 잔에 넘치는 포도주는 당신의 피였습니다. 제자들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미사성제를 거행할 때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셨으며, 그 힘으로 살았습니다. 교회는 이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예수님의 이 사랑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면 되겠습니까? 이 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써, 그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느냐? 너희는 나를 ‘스승님’ 또는 ‘주님’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 내 가족의 발을 씻겨 주는 사람, 내 이웃과 형제들의 발을 씻겨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삶이 주님의 식탁에서 사랑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살아날 것입니다. 내 가정이 살아날 것이고 내 이웃과 형제들이 살아날 것이며, 우리 본당 공동체는 물론 이 사회, 이 나라, 이 세계가 살아날 것입니다.
이 밤 주님께서 세워 주신 성체성사는 생명의 성사, 우리를 살리는 성사입니다. 머리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성사이지만,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모두 함께 살아야 할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 안에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담아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처럼, 사랑의 성사를 받아먹는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식탁에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무릎을 꿇고 서로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살아날 것이고, 우리 모두 부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욱현 신부님_“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오늘 우리는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며,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만찬을 기념한다. 성목요일의 중심에는 성체성사의 제정, 사제직의 기원, 그리고 발 씻김의 모범이 있다. 복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 여기서 “끝까지”는 단순히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완전한 사랑,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충만한 사랑을 뜻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발 씻김은 그리스도의 겸손한 사랑의 성사적 표징이며, 이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정화한다.”(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55,7).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것도, 발을 씻어 주심도 모두 이 끝까지의 사랑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3절)는 것을 아시면서도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며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다. 권능의 주님께서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으로써, 교만한 인간의 머리를 낮추셨다.”(Homiliae in Ioannem 70,3). 하느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발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이다. 베드로는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8절)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8절)라고 하신다. 이 발 씻김은 단순한 세정 행위가 아니라, 정화와 사명 부여의 신비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이라고 했듯이,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복음을 전할 사도로 파견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다의 발까지 씻으셨다. 성 암브로시오는 말한다. “주님은 원수의 발까지 씻으셨으나, 유다는 사랑을 배반하고 발을 씻어 주신 손에 못을 박았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X,112). 이처럼 주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사랑은 배신을 당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15절). 이는 겸손과 사랑의 삶 전체를 살아가라는 초대이다.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 그것은 곧 사랑으로 형제를 섬길 사명을 함께 받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성체와 사제직, 그리고 발 씻김의 사랑을 묵상한다. 주님은 성체성사 안에서 자신을 내어주시고, 발 씻김을 통해 우리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이셨다. 이제 우리도 그분을 본받아 서로의 발을 씻어 주며, 성체의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4절)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성삼일의 거룩한 여정을 함께 걸어가자. 이병우 신부님_"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13,1) '예수님의 완전한 모범이 되자!' 오늘 복음(요한13,1-15)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인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13,14-15)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요,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육(사람)이 되신 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모든 여정은 '우리를 위한 완전한 모범'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단순하게 진솔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은 일 년 전례 중 가장 거룩하고 중요하고 그래서 전례등급으로 최고의 등급인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먼저 오늘 오전에 모든 사제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성유축성미사'가 있고, 저녁에는 성체성사의 제정과 발 씻김 예식을 거행하는 '주님만찬미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 안에 머무는 시간인 '밤샘성체조배'가 있습니다. 이 거룩한 시간에 온전하게 함께 합시다! 우리도 서로서로의 발을 씻어 줍시다! 우리도 온전한 내어줌이 됩시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의 완전한 모범이 됩시다! 저는 어제 함안성당 신부님을 찾아가 고백성사를 보았습니다. 성사의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ㅎㅎ 송영진 신부님_<“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요한 13,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2-15)>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에 하신 말씀은, 루카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과 ‘같은 가르침’입니다.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22,24-27)” 최후의 만찬 때, 자리 배치 문제로 사도들이 말다툼을 벌인 것 같습니다. 사도들 사이의 서열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사도들이 서로 예수님의 옆자리에 앉으려고 했기 때문에 생긴 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자기를 높이려고 하지 말고 낮추어라.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섬겨라.” 그리고 이 가르침은 ‘새 계명’에 연결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이 가르침은 요한복음 15장에 다시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9-13).” ‘낮춤’과 ‘섬김’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고 사랑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겨라.”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를 사랑하니까, 나를 낮추고 너를 섬긴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은, ‘낮춤’과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일이기도 하고, “벗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일이기도 합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6-18).” 일 년에 한 번 세족례를 거행하는 것만으로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예식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 예나 지금이나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흔히 내세우는 명분이 “평화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 없이는 평화도 없고 정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침략 전쟁 가운데에 정의로운 전쟁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태 26,52). 국가 사이의 일이든지 개인 사이의 일이든지 간에, 자기 살자고 남의 목숨을 빼앗는 자는 하느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 실천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배반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사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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