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9일 (일)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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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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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3-28 ㅣ No.188747

지난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저녁 미사만 있었습니다. 구역장 회의에서 두 번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는 윤 신부님, 수녀님들과 의논하였고, 올해부터 미사를 두 번 하기로 했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선택이었습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많은 분이 함께하셨습니다. 저도 재를 이마에 받고, 하루 종일 다녔습니다. 이마에 받은 재가 마치 훈장같았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윤 신부님은 성경 통독 40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고 선택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선택입니다. 인생은 어쩌면 선택의 연속입니다. 토인비는 이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선택은 그 기준이 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 나에게 영광이 되는 방향, 나에게 기쁨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모든 생명은 이런 흐름에 따라서 진화하였습니다.

 

신앙인에게 또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그 선택을 식별(discernment)’이라고 합니다. 식별의 기준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 23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더욱 큰 영광을 위해서 부유함보다 가난을 택할 수 있고, 하느님의 더욱 큰 영광을 위해서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 있고, 하느님의 더욱 큰 영광을 위해서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 있다.” 신앙의 길은 식별의 길과 같습니다. 노아는 남들이 먹고 노는 동안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100세가 넘어 낳은 아들을 기꺼이 하느님의 제단에 바치려고 했습니다.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은 엘리사의 이야기를 듣고 요르단강에 몸을 담갔습니다. 그리고 나병이 나았습니다. 수산나는 치욕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택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을 보내셔서 수산나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오늘 성지 주일에서 우리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선택한 사람들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식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빌라도, 헤로데, 대사제, 율법 학자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라고 외쳤던 군중은 태도가 돌변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라고 가겠다고 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했습니다.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도 모두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하느님의 더욱 큰 영광 보다는 저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곤 했습니다. 낮은 자리에 앉기보다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기보다는 남에게 넘기려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는 하느님의 더욱 큰 영광을 위해서 식별했던 사람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곁에는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시는 어머니 성모님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성모님은 예수님 고난의 길에 끝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에 넘어지셨던 예수님은 잠시 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드렸던 베로니카가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의 슬픔을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서 하혈이 멈추었던 여인, 예수님의 일어나라라는 말씀으로 죽었다 살아났던 소녀의 아버지, 예수님께 믿음을 칭찬받았던 이방인이었던 시로페니키아 여인, 예수님께 죄를 용서받고 새 삶을 찾았던 여인,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렸던 여인입니다.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였던 십자가 위의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성서는 이들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나는 어느 편에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 속에 있었는지,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와 함께 있었는지,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처럼 나 역시 예수님을 외면한 것은 아닌지, 내가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모함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갈 수 있다면,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린 베로니카처럼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였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처럼 예수님의 죽음까지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의 편에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넌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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