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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목숨을 걸 말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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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주 긴박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 합니다.이유는 하나입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 예수가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들어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태도가 놀랍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오해입니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라며 일단 위기를 모면하려 하거나, 무서워서 도망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시며 당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요한 10,34)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돌을 든 자들은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요. 그런데도 왜 굳이 그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진리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심지어 돌이 날아오는 순간이라도 진리는 허공에라도 외쳐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가 진리를 말할 때,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으면 입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라며 포기합니다. 하지만 성인들은 달랐습니다. 진리는 인간의 귀에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질서 속에 선포되어야 하는 생명의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성 안토니오가 이탈리아 리미니에서 설교할 때였습니다. 그곳의 이단자들은 완고하게 귀를 막고 성인을 조롱했습니다. 성인은 그들에게 실망하여 입을 닫는 대신,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어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너희 완고한 인간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니, 나는 이제 물고기들에게 설교하겠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질서 정연하게 성인의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큰 물고기는 뒤에, 작은 물고기는 앞에 서서 성인의 축복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광경을 본 이단자들은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진리는 허공에 던져진 것 같아도, 결국 만물을 통해 증명됩니다. (출처: 『성 안토니오의 꽃송이』 제40장)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것, 그것만이 진짜 진리입니다. 진리는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내 주장이 죽음 앞에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교만'이었을 뿐 '진리'가 아닙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1995)의 마지막 장면은 전율을 불러일으킵니다. 윌리엄 월리스는 처참한 고문을 당하며 단 한 마디, "자비(Mercy)"를 구걸하면 고통을 끝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군중도 그가 불쌍해서 "자비라고 말해!"라고 울부짖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온 힘을 다해 외칩니다. "자유(Freedom)!" 그에게 자유는 죽음보다 귀한 진리였습니다. 만약 그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비를 구걸했다면, 그가 평생 외쳤던 자유는 한낱 정치적 구호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이 외친 것이 진짜 진리임을 증명했습니다. (출처: 영화 '브레이브 하트' 1995) 오늘 예수님은 돌을 던지는 자들 앞에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고 외치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외치십니다. 이 외침은 결국 십자가라는 거대한 돌에 부딪혀 죽음을 맞이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바로 그분의 말씀이 진짜 진리였음을 온 우주에 증명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오늘 누군가 여러분의 자존심에 돌을 던질 때, 혹은 사회적 불이익이라는 돌이 날아올 때, 결코 철회할 수 없는 어떤 진리를 품고 계십니까? "나도 하느님의 자녀다!"라는 이 정체성만큼은 돌을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느님의 본성을 가졌다는 이 진리가 내 안에 살아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어떤 위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리는 사자와 같다.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저 풀어놓기만 하라. 그러면 진리가 스스로를 방어할 것이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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