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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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 27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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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3-27 ㅣ No.188739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신성모독?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대화 상대자로 등장하여 자주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특히 율법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바리사이들사제계급 출신의 사두가이들정치적 세력이었던 헤로데 당원과 열혈당원 등이들 유다인들은 하나같이 성경에 친숙했던 사람들입니다물론 예수님 시대에 성경이라고는신약의 교회가 말하는 구약성경뿐이었으나율법과 예언서 그 밖의 성문서에 밝았던 사람들이었기에예수님도 가르치실 때 이를 전제로 말씀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성경을 잘 알고 있으니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수없이 읽고 전해 들었으니성경을 통해 특별히 예언자들이 예고한 메시아를 기다려 왔으니예수님을 보자마자 이분이 하느님이 보내신 분임을 알아보아야 했으나성경을 모르던 이방인들만도 못한 동족 유다인들을 지켜보면서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상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오늘 복음은예수님이 중대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가운데 하나였던 투석에 임할 채비를 갖추고 있던 유다인들을 향하여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시는 말씀으로 열립니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그 가운데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예수님은 말씀을 포함해서 모든 행적을 성부에 뜻에 따른 것따라서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한 좋은 일로 역설하시며 이의를 제기하십니다이에 대한 응답 속에서우리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좋은 일이라는 데는 동감하나그 좋은 일의 참된 의미 또는 진정한 목적은 보지 못함에 주목합니다.

마음을 편하고 행복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때로는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시는 말씀또는 사회의 약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가까이하시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몸짓과 함께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면서그저 볼만한 일나쁘지 않은 좋은 일’ 정도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하느님이 보내신 분임을 알아보고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 곧 구원을 선사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일찍부터 알아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신성모독으로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하느님이 하느님 모독죄로 고발되십니다!!! 사실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율법의 제정자이신 하느님이 엉성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법에 의해 사형을 선고를 받으시고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 일들은 바로 세상과 인류 구원에 관한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한 일들곧 아버지의 일들입니다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안에서 아버지의 일들을 볼 수 있다면마땅히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은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며하느님 아버지 모독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우리는 믿어 고백합니다사순시기 막바지에 접어들면서그 어느 때보다 기도 안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인지 살피고우리의 말과 행동을 보고 이웃들이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가 뵙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고 정진해야 할 때입니다오늘 하루그러한 마음으로 신앙인의 삶을 거침없이 펼쳐나가는값진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 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기적 때문이 아니라,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33절)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수님은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라고 한 분이다. 성 아타나시오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De Incarnatione 54,3) 곧,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처럼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말씀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신적 생명을 나누어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시편 82,6)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다.”(35절). 성 이레네오는 이 말씀을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신이라 불린 것은 그들 자체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 때문이다.”(Adversus Haereses IV,38,4) 만약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하느님과 같아진다면, 그 말씀 자체가 참된 하느님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당신의 사명을 밝히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37-38절).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내가 하는 일들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드러낸다.”(In Ioannem Tractatus 48,9) 곧, 아들의 일은 곧 아버지의 일이며, 예수님의 사명은 곧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그분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요르단강 건너편,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셨다(40절). 이것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라, 구원의 여정이 유다인들의 거부를 넘어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확장됨을 상징한다. 교회는 이를 “보편 구원 의지”로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교리서 2822항)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와 요한이 증언한 대로 그분을 믿게 되었다고 복음은 전한다. 이는 거부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이 물러나고, 열린 마음으로 믿는 이들에게 구원이 다가옴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하는 아들”이시다. 우리도 그분을 믿고 따르며, 아버지의 일을 함께 살아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역시 빛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내가 하는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38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아버지의 일을 살아가자. 


이병우 신부님-"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요한10,39) 

 
'우리는? 나는?' 
 
오늘 복음(요한10,31-42)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파스카 축제인 주님부활대축일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과 유다인들 사이에 갈등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공생활 전반부의 갈등이 '율법에 대한 갈등'이었다면, 공생활 후반부의 갈등은 '예수님의 신성(하느님)에 대한 갈등'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14,9)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분개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신성모독죄'라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INRI(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이는 십자가 위에 붙어져 있는 글자로, 유다인들의 조롱이 담겨 있는 예수님의 죄목으로, 그 뜻은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입니다. 
 
'파스카, 곧 부활의 대전제'는 '십자가, 곧 죽음'입니다.
죽으러 오신 예수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이것으로 예수님께서 참메시아시며 하느님이시라는 분명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이는 '우리도 부활하려면 죽어야 한다는 결정적 표지'입니다. 
 
"주님은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시옵니다. 찬양하올 주님 불렀을 때, 저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었나이다."(화답송) 
 
예수님은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곤경 중에 나를 구해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이런 분으로 믿어 고백하고 있는가?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고 있는가? 아니면 크고 작은 죄들로 예수님을 십자나무에 매달고 있지는 않은가? 
 

곰곰이 나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영진 신부님_<“나는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요한 10,31-42).>


 


1) 뒤의 14장을 보면, 38절의 말씀과 같은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한 14,8-9ㄷ.10ㄴ-11)”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곧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그 일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은 구세주(메시아)”


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의 일’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 또 상황에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일이 먼저 이루어지고,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일’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든 ‘예수님의 일’과 ‘예수님의 신원’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니까 메시아시고,


메시아시니까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2)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고 한 것은,


“아버지와 하는 하나다(요한 10,30).” 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33절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라는 말은,


“당신이 하는 일이 ‘좋은 일’(‘하느님의 일’)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신이 하는 일은 ‘악한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특히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악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안 지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요한 5,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요한 9,16).”


 


3) 34절의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는 말씀은,


시편 82편 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사람들처럼 죽으리라.


여느 대관들처럼 쓰러지리라(시편 82,6-7).”


시편 82편에서 말하는 ‘신들’은 ‘법관들’을 가리킵니다.


법관들을 ‘신들’이라고 부른 것은,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권한에 참여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82편은, 올바른 재판을 하지 않는 법관들을


꾸짖으면서,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시편입니다.>


 


4) 37절의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는, 뜻으로는 “믿으면


안 된다.”인데, 메시아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메시아로 믿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38절의 “나를 믿지 않더라도”는,


뜻으로는 “그동안 나를 믿지 않았더라도”입니다.


38절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본 적이 없어서 예수님을


안 믿었던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일’을 본다면 믿게 된다는


말씀이기도 하고, ‘예수님의 일’을 보았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완전한 일치를 뜻하는 말씀이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와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복음 선포’ 라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에 신앙인이 된 사람들은, 사도들의


증언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또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이라는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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