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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3월25일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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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말씀을 품으신 마리아 [말씀] ■ 제1독서(이사 7,10-14) 기원전 8세기경 남 유다의 임금 아하즈는, 인접 소국들이 연합으로 가해온 위협을 모면하기 위해 강대국 아시리아 제국의 힘을 빌리고자 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와 같은 몰지각한 정책을 질타함과 아울러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의지할 것을 촉구하나, 아하즈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사야는,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계획을 조금도 늦추지 않으실 것임을 예고합니다. 다윗 왕조의 미래를 책임질 상속자가 태어날 것이며, 그는 ‘임마누엘’로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징표가 될 것입니다. ■ 제2독서(히브 10,4-10)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유다교의 신도들은 각종 종교의식에 힘입어 자신들을 좀먹는 악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나, 이와 같은 종교의식들은 외적인 정화(淨化)만을 허용했을 뿐이며, 예언자들의 선포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거부되기 일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부의 뜻에 응답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완전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분이며, 이로써 생명의 원천인 참 제사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복음(루카 1,26-38) 하느님은 인간의 기대나 관점을 초월하여 신묘한 방법으로 당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며 현존하십니다. 비천한 한 여인, 그러나 당신의 말씀에 온전히 열려 있던 신심 깊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하느님은 몸소 당신의 ‘성전’을 마련하십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할 새 이스라엘의 백성의 참된 성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새김]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십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것이 사랑일 때, 사랑의 열매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삶 전체가 믿음이었던 한 여인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의 모습을 취하십니다. 마리아 안에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소명이 이제 완성의 길을 걷습니다. 마리아는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했던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마리아 안에서 싹틀 수 있게 되었으며,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 하느님께 참된 희생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예수님 안에서 이 말씀은 효력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느님은 마리아가 그러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당신 거처로 바로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당신의 성전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김으로써 구세주의 거처가 되었듯이, 우리 역시 열린 마음, 자신을 온통 비우고 낮추는 마음으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거처가 되어드려야 합니다. 늘 말씀을 품고 가슴에 새기며, 그 말씀 안에 담긴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통하여 드러나고 실현에 옮겨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의 이 말씀 한마디로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응답 속에는 그분이 감수해야 할 고통의 시간들이 이미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 출산의 시간부터 이집트 피난과 어린 시절, 온갖 반대를 무릅써야 했던 예수님의 복음 전파 시기, 끝내 피땀을 흘려야 했던 수난과 처절한 십자가상 죽음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성모님은 늘 아드님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우리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도 성모님처럼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삶, 어떠한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성모님의 도움으로 신앙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삶을 다짐하며, 아울러 우리 주위를 살피는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 영적으로는 물론 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앙인다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신비를 기념한다.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와 마리아의 응답 안에서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 한 여인의 "예!, Fiat!"에 당신의 구원 계획을 맡기셨다. 1. 은총의 충만함: “은총이 가득한 이여” (루카 1,28)
천사가 건넨 인사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는 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호칭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특별히 선택하시고, 은총으로 가득 채우셨음을 의미한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하와가 불순종으로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왔듯이, 마리아는 순종으로 인류에게 생명을 가져왔다.” (Adversus Haereses, III,22,4) 즉,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의 ‘순종’이야말로 인류의 새 역사를 열었다.
2. 말씀의 잉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35절) 창세기 1,2에서 성령이 물 위를 감돌며 창조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성령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서 새 창조를 시작하신다. 성 아타나시오는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으니, 이는 우리가 신성에 참여하기 위함이다.”(De Incarnatione, 54,3) 곧, 마리아의 ‘예!’는 하느님의 강생 사건을 가능하게 하였고, 그 강생은 곧 우리의 구원이자 신화(神化, theosis)의 시작이다.
3. 순종의 모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마리아의 응답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자기 전 존재의 봉헌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묵상하며 말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먼저 마음에 잉태하였고, 그다음에 몸으로 잉태하였다.”(Sermo 215,4) 곧, 마리아의 순종은 믿음의 결단이며, 그 믿음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교회 헌장은 선언한다. “마리아는 믿음으로써, 새로운 하와가 되어 온 인류를 위해 순종과 기쁨을 가져왔다.”(56항)
4. 우리의 응답: 말씀을 잉태하는 삶 마리아의 순종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요청된다. 우리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잉태하고, 그것을 삶으로 낳아야 할 사명을 받았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는 모두 마리아와 같은 영적 모성이 있다. 그리스도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서 계속 태어나신다.”(Verbum Domini, 28)
결론 오늘 우리는 마리아의 “Fiat!(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안에서 믿음의 모범을 발견한다. 하와의 불순종을 뒤집은 새로운 순종,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 새 창조, 그리고 말씀을 마음에 잉태하고 세상에 낳아주는 교회의 사명이다. 마리아의 태중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듯이, 오늘 우리 마음 안에서도 말씀이 자라나 이웃에게 전해져야 한다. 우리 각자의 “예!, Fiat!”이 곧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씨앗이 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제목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25)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1,31)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예수님!' 오늘 복음(루카1,26-36)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입니다.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 이렇게 말하게 하십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 이 말에 몹시 놀란 마리아에게 천사는 다시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1,30-31ㄱ) 하느님께서 당신 구원 사업의 도구로 마리아를 선택하십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십니다.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고,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이 엄청난 일 앞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거룩한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의 오심은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오심입니다. 오늘 제2독서(히브10,4-10)가 이를 전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10,7.10)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작은 불편함이나 고통 앞에서도 쉽게 넘어집니다. 나를 위해 죽으러 오셨고, 그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데도, 그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병우 루카 신부 송영진 신부님_<“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26-38).”
1)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아서, “우리는 성모님의 순종과 응답을 본받아야 한다.” 라고 말하면 간단한데, 실제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든지, 성모님을 본받아서,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고,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을 만났을 때에는 “그것이 정말로 ‘하느님의 뜻’일까?” 라고 물으면서 순종하고 응답하기를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일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먼저, 천사가 나타났을 때, 천사를 천사로 알아보는 것, 또는 천사라는 것을 믿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정말로 천사일까?” 라고 반신반의 하는 상태라면, 천사가 전하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도 의심하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선뜻 순종하고 응답하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성모님은 어떻게 그렇게 천사를 천사로 바로 알아보았을까? 그리고 천사의 말을 어떻게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바로 알아들었을까? 우리는 자세한 상황을 모릅니다. 그러나 “평소에 늘 하느님과 함께 생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첫 번째로 본받아야 할 것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믿고, 순종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신앙인으로서 늘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는 것”이고,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다.” 라는 믿음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고,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루카 1,6), ‘상식의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천사를 천사로 알아보았으면서도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루카 1,18-20).
2) 이사야 예언자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아뢰었다(이사 6,8).”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고, 이사야가 그 부르심에 응답했는데, 이사야는 ‘수동적으로’ 응답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먼저 지원함으로써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시고 일을 맡기실 때, 그 사람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사야 같은 ‘능동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이제 이 말을 그대로 성모님의 순종과 응답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일방적인 통고’가 아니라, 성모님의 동의를 미리 구한 일이기 때문에, 아마도 천사의 말은 실제로는 ‘명령’이 아니라 ‘의논’에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순종과 응답도 이미 결정되고 지시된 일에 ‘수동적으로’ 따른 일이 아니라, 이사야처럼 “그 일을 저에게 맡기십시오.” 라고 ‘능동적으로’ 지원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장상이 어떤 ‘어려운 임무’를 맡기고 파견할 때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도 순종이긴 한데, 자신이 먼저 능동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순종입니다.>
3) 성모님의 응답을 뜻에 따라 재구성하면, “저는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서 이루어지기를.”입니다. 순종과 응답은 그처럼 ‘열망’에서 나옵니다. 만일에 속으로는 원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순종하고 응답한다면, 그것은 거짓 순종이 되고, 위선이 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순종과 응답을 ‘스스로’ 원해야 합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더라도 능동적으로 순종하고 응답하면, 언젠가는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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