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6일 (목)
(자) 사순 제5주간 목요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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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님 - 십자가를 지나서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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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경루카 [achim9202] 쪽지 캡슐

2026-03-24 ㅣ No.188683

오르비에또 대성당 사진 이상각

 

 

 

오늘 제 마음에 머문 복음 요한8,21-30은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는 자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이 잘될 때에는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자기를 붙들어 준 사랑도,

조용히 함께해 준 은혜도

그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잃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고,

무너져 보고 나서야 알게 되고,

십자가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요한 8,28)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이 누구요?”

사실 이 물음은

그때 사람들만의 물음이 아닙니다.

우리도 살아가다가 문득 묻게 됩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말 저와 함께 계신 분이십니까?

정말 제 삶에도 오시는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왔다.”

“나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

“나는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

예수님은

혼자 뜻을 세우고 사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서 오신 분,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분,

아버지께 들은 것을 전하시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길을 걸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도,

예수님의 사랑도,

예수님의 용서도

모두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갑자기 용서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삶 전체가 이미

아버지와 하나 된 삶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 안에 머무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아버지에게서 오신 아드님으로 사신 것입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 ‘들어 올림’은

영광처럼 보이는 높임이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패배처럼 보였고,

수치처럼 보였고,

끝장처럼 보였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드러납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죽이는 이들 앞에서

기도하십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실제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몸이 찢기는 고통도,

모욕도,

버려짐도,

억울함도

그대로 겪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도 자기 목숨을 빼앗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예수님의 무력함이 드러난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자리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에게서 오신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끝까지 살아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 장면을 본 백인대장이 고백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많은 전투를 겪었을 것이고,

많은 죄수들이 십자가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분노하며 죽는 사람,

저주하며 죽는 사람,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는 사람도

수없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같은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용서를 말하는 사람,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는 사람.

백인대장은

바로 그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드러나는

그 사랑과 용서 앞에서

믿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냥 내 뜻대로 살고,

내 힘으로 살고,

내 계획대로 되는 동안에는

굳이 주님을 깊이 찾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십자가가 옵니다.

한 형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인데

아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음악을 하고,

또 사업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주변의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에게

교회에 나와

전례 시간에 함께 봉사해 주면 좋겠다고 권합니다.

그래서 선후배들과 친구들이

대성당에 나와 전례에 참여하면,

그저 말로만 고맙다고 하지 않고

자기 사업에서 번 돈으로

최소한의 감사라도 표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군가를 교회로 이끄는 일도 쉽지 않고,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자기 것을 내어 놓는 일은 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영화관을 몇 개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사업이 잘될 때에는

하느님을 찾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재미있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왔습니다.

거리두기와 인원 제한은

영화관 사업에는 치명적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시간이

삶 전체를 뒤흔드는 시련이었습니다.

그는 그때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깊은 고통 속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버티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많이 무너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그에게 분명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십자가 안에서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는 몰랐던 분,

부족함이 없을 때는 찾지 않았던 분,

그 예수님을

죽음을 생각할 만큼 어두운 시간 속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코로나라는 그 십자가가

자기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참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보통

십자가가 오면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바로 그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고통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시련이 반가워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픔의 시간 속에서

내 힘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때 비로소

나를 붙들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막연히 좋은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구나.

아버지에게서 오신 분이시구나.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구나.

그래서 내가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시구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도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강해서만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씀하시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대로 사시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예수님의 실패가 아니라

아버지와 하나인 아드님의 사랑이

끝까지 드러난 자리입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십자가 위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높이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셨습니다.

사랑으로.

용서로.

순종으로.

아버지와의 깊은 일치로.

그리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묻게 됩니다.

도대체 이분은 누구신가.

그 물음 끝에서

믿음이 시작됩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자리이지만

동시에 계시의 자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자리이고,

예수님이 누구신지가 밝혀지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자기 삶의 십자가 앞에서

너무 빨리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

지금 내가 견디고 있는 아픔,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어두운 시간이

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조용히 보여 주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위의 글은 이상각 신부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출처] 십자가를 지나서야 알게 됩니다|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 블로그https://blog.naver.com/rsony4u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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