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
|---|
|
벌써 사순 5주일입니다. 5주일을 앞서서 어제 재속회를 갔습니다. 다들 부활을 맞이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복음을 읽고 나서 너무 복음의 길이가 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게요 너무 복음이 길었습니다. 다 읽은 자매님은 중간에 쉬었습니다. 너무 길다고 하시면서 .. 길었습니다. 그런데 복음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예수님이 사랑하신 친구 라자로가 죽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도착하십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는 순간에 표정이 여러가지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빠가 죽었어요. 그리고 하는 말이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말은 듣는 순간에 아무런 의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주님이 계셨더라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우리와 같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었습니다. 복음을 읽고 같이 나누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마찬가지 ? 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그들의 말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빠는 자고 있다 그는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무덤에 가셔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십니다. 라자로에게 명령하십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님은 사람들의 반응과 다른 반응을 보이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생명을 주관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처음부터 주님이 자신의 신원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고 하나의 자신의 관점에서 내가 바라면 나의 바람대로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주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활동을 하시는 동안 라자로는 죽고 예수님은 그 후에오십니다. 영적인 주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주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점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관점에서 소중한 오빠가 죽은 것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주님은 어디에 ?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셔서 나를 구원해 주셔야지가 그들의 마음이고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관계 없이 행동하십니다. 관점을 주님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진정한 죽음인가?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이신 눈물은 라자로를 잃은 슬픔도 있지만 그러나 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자각이 없이 죽음을 죽음으로 인식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주님은 주님으로써 더 슬퍼하셨을 것입니다. 인간 본인 영혼의 자각이 없이 살다가 죽는 것이 더 슬픈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더 슬프고 안타까운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그런 모습 넘어 인간 본연의 영혼의 자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영혼의 모습으로 창조하였고 너도 그 본래 모습을 찾아라..그래서 내가 온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라자로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찾아야 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