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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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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팀에서 법을 다루었습니다. 주로 토론합니다. 사안에 따라서 이것이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냐? 이것을 따지고 사람들로 부터 정당함을 얻고자 증거와 논리의 조합을 탄탄하게 하여서 상대를 공격하고 누가 상식에 가까이 가있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을 이기느냐 혹은 지느냐를 판가름합니다. 세상 사는데도 정당성으로 무장하고 나의 정당성이 결국은 진리라고 믿고 그것을 신앙 안으로 들어와서 정당성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예언자적 삶이라는 의미로 포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런 말을 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삶은 논리적으로 정당하냐 아니냐? 정당성 하나만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대변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 정당성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등으로 논리적인 조합으로 성당안에서도 신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겉의 표면은 신앙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주장한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신부님들의 강론 안에서도 어느 순간에는 주장하시는 신부님들을 종종보게되고 논리적인 조합으로 신앙을 판단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복음 말씀을 마찬가지로 이성으로 판단하기에 복음을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강론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논리의 연장에서 보았을 때 이전 예수님과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의 논쟁의 것. 이것은 이성의 정당성에 대한 것입니다. Fact를 기반으로 한 이성의 정당성. 정당성을 찾는 행위가 성전에서 신앙의 최우선이라고 신봉하는 이들이 바리사이이고 율법학자들입니다. 이성의 정당성은 세상의 문서, 증언들의 조합으로 논리의 정당성을 따지는데 그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도 그들의 이성의 정당성 안에서 논리적인 증거 혹은 역사적인 Fact가 어디에 그런 문구가 있느냐를 놓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고 따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요. 그런데 성인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앙의 어둔 밤 안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계시대로 걸어가는데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그들의 삶이 세상의 것에 어디에 있으며 그 정당성을 어찌 증명할 것인가? 이렇게 신앙을 이성의 정당성 앞에 이를 설명하도록 요구 받는 성인들의 고단한 삶.. 세상의 이성과 하느님의 개시적인 인도 안에서 충돌이 일어나면서 고뇌하는 모습의 삶이 성인들의 삶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성인들의 삶이 성인의 삶으로 넘어갔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삶은 세상에서 정당성을 찾으므로써 자신의 옳음을 인정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충만한 삶입니다. 내어 맡김의 삶입니다. 성령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성의 정당성은 세상 안에서 나를 찾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주님을 찾는 것과는 상반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느님의 의, 성령의 이끄시는대로 걸어가는 길이 진정한 성화의 길이요 완덕의 길입니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것을 찾는 것은 사람안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 성려의 이끄심에 내어 맡기는 삶입니다. 나를 버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안에서 같이 나누는 삶.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성의 정당성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기는 삶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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