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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서 어중이떠중이가 되지 않으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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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탐욕을 부리자,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다시 울며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민수 11, 4)
민수기의 이 구절을 보면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이라는 작품 중 일부분이 생각납니다.
갑자기 무게를 잡으며 대중 앞에 나서서 연민을 자아내는, 그러면서도 설교하는 듯한 어조로 <당신들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하는 식의 말을 서글픈 목소리로 내뱉을 때, 나는 아주 극도의 역겨움을 느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을 때려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까지 했다. 오히려 징징대거나 불만을 털어놓지 않고 함묵하고 있는 편이 열 배는 훌륭한 태도라는 것을, 이 가련하고 통속적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 미성년, 도스토옙스키
공동체의 화목은 자신이 어중이떠중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거룩한 하느님의 집에 삼삼오오 모여, 허구한 날 어느 교우가 본당에서 물을 흐린다는 둥, 신부와 수녀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하느님이 아무 청도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둥. 여러 가지의 불필요한 뒷말을 하기 이전에 내 눈의 들보부터 빼내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나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어중이떠중이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스스로 본당에서 하는 말과 행동을 더욱 조심하게 됩니다. 첫째로 주변 교우들에게 내가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하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로 에페소서 말씀처럼 어둠의 일에 가담하는 일을 그만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중이떠중이가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이지요.
저 또한 어중이떠중이가 되어본 적도 있고, 또 어중이떠중이로 인해 울며 동조한 적도 있으므로 문득 이 구절을 읽으면 부끄럽고,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내가 울게 만든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또 나를 울게 만든 이들에 대한 연민을 느꼈지요. 하지만 이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중이떠중이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기도 어렵고, 그런 이들에게 동조하지 않으며 울지 않는 일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집트 땅에서 탈출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여전히 마음이 이집트에 머물고 있다면 이집트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낸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어중이떠중이가 돼서 멀쩡히 신앙 생활하는 타인까지 울부짖게 만들지 말고, 또 어둠의 일에 가담하게 만들려는 이들에게 동조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한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살던 이집트 땅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제 너희를 이끌고 들어가는 가나안 땅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너희는 그들의 규칙들을 따라서도 안 된다. (레위 18,3)
- 대한민국 어딘가에 거주하는 어중이떠중이가 올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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