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1일 (수)
(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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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_* 오늘의 말씀(3/10) : 사순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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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3-10 ㅣ No.188415

 

* 독서 : 다니엘 3, 25. 34-43

* 복음 : 마태 18, 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 <오늘의 강론>

사순시기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의로움”일 것입니다.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맺음”입니다. 그 올바른 관계맺음의 한편에는 “회개”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제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마태 18,21)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참으로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절대적입니다. ‘만약 상대가 회개하거나 용서를 청하면’이라든지 혹은 ‘상대가 준비가 되면’이라든지 같은 조건을 달지 않으시고,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용서를 적당히 하거나 알량한 선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구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셔도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자기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용서는 무색해지고 말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넘겨준 유다는 자신의 죄를 뉘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다윗, 성범죄를 지은 막달레나, 스승을 배반한 베드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바오로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용서했으며, 그래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사실,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바로 그 용서의 심연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결국, 먼저 자신을 용서할 때 타인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머리로 하거나 동정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용서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 됩니다.

사실, 우리가 용서한다는 것은 그의 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며,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이 말씀은 용서받는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절대적으로 용서를 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콜로 3,13). 아멘.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주님!

일곱 번이 아니라 이제는 더 큰 사랑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에 사랑을 더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용서하셨으니

용서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선으로 사랑하고,

그가 잘 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아무리 꺾이어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주님처럼,

저 역시 당신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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