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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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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토요일] 루카 15,1-3.11ㄴ-32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비유를 말씀하시는 대상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당신 식탁에 받아주시고 함께 어울리시는 모습을 보고 투덜거립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즉 자기들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그분의 존재와 활동이 자기들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열심히 살아온 자기들은 ‘찬밥’신세처럼 느껴지고, 세리와 창녀 같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다 누리는 것처럼 보이니 상대적 박탈감과 억울함에 빠져 죄인들은 물론이고 예수님까지 싸잡아서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깊이 느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사랑과 자비의 체험을 통해 자신들이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녀임을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 깨달음으로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기쁨과 행복을 그분과 함께 누리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복음 속 비유에 등장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에는 그런 예수님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는 것이지요. 비유 속에서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온전히 아버지와 함께 있을수만 있다면, 신뢰와 사랑으로 그분과 일치될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것이 곧 자신의 것이 되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이 아버지께 의무를 다해야만,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고 ‘종'처럼 따라야만 아들로서의 지위를 겨우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자녀로 살기를 바라시는데, 우리의 의지와 사랑으로 그분 뜻을 받아들이고 따름으로써 삶의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시는데, 하느님의 뜻을 강압적인 ‘명령’으로 여기고 ‘종’처럼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따르면서, 그 ‘복종’에 대한 대가를 바라고 요구하는 것, 그것이 오늘 비유 속 ‘큰 아들’의 잘못이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의 잘못이기도 한 겁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자비로운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름으로써 그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건 나를 감시하고 구속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보살피시고 지켜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고자 하시는 건 내가 욕심부리고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가지고 계시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가장 바라시는 한 가지는 당신 말씀에 종처럼 절대복종 하는 게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그분 마음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은 다른 이들을 함부로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렇게 돌아오면 마치 자기 일처럼, 하느님과 함께 기뻐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분과 함께 누리는 그분의 진짜 자녀가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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