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일 (월)
(자)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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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 거룩한 산 위에만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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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3-01 ㅣ No.188242

 

 

 

타볼산 정상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베드로 사도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었던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스승님의 모습이 갑자기 변화되었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말로만 듣던 이스라엘 민족의 대 영도자 모세와 대 예언자 엘리야가 눈앞에 나타나, 그분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에 살고 분위기에 죽는 사람이었던 분, 급하고 충동적이었던 베드로 사도는 갑작스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황홀하고도 기상천외한 분위기 앞에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멘탈 붕괴, ‘멘붕’ 상태에 빠졌습니다.

 

찰나의 천상 체험으로 인해 무아지경에 빠진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 17,4)

 

베드로 사도는 비록 잠깐이지만 맛보고, 느끼고, 만끽한 천국 체험을 붙들고 싶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인 산밑의 세상으로 내려가지 않고, 여기 지금, 타볼 산 위에서, 광채로 빛나는 인물들 사이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약속까지 합니다.

 

그러나 스승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하시는 말씀,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잠깐이지만 맛본 천상 체험을 뒤로하고, 다시 산 밑으로 내려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짧게나마 천상을 체험한 사도들이 하산(下山)해보니, 무정하게도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피곤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고, 어제와 조금도 다를바 없는 인간 실존의 비참함은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아직 영광과 완성의 때가 도래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스승님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도래할 그 순간을 맞이하려면, 먼저 그분처럼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볼 산 변모 사건을 통해 자신의 신원과 정체를 핵심 제자들에게 뚜렷하게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받는 외아들로서 머지않아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시겠지만, 죽음에 머물러 있지 않으시고 반드시 영광스럽게 부활하실 것이며,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실 것이며 세세대대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형제들과 공동체 식사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원장 신부님께서는 식사 후 기도를 하려고, 계속 분위기를 살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한 식탁에서는 한 형제의 주도로 나라와 민족, 인류와 지구 온난화 등을 주제로 한 범국가적, 범세계적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원장 신부님은 이런 말로 대화를 종료시켰습니다. “자, 그럼 세상은 나중에 구하고, 우선 마침 기도부터 바칩시다.”

 

그렇습니다. 이상은 원대하게, 뜻은 크게 품어야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늘 우리의 발밑을 향해야겠습니다. 매일의 귀찮고 짜증 나는 일상사 안에 하느님께서 굳게 현존하고 계십니다. 부족하고 죄투성이인 우리 공동체 안에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거룩한 산 위에만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귀찮겠지만 또다시 산 밑으로 내려가야겠습니다. 형편이 좋든지 나쁘든지, 내려가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겠습니다. 조금 전에 맛본 감미로운 천상 체험을 이웃들에게 나눠야겠습니다. 저 아래로 내려가서, 우리도 복음 때문에 고생하고 박해받으며, 멸시당하고 배척당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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