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5일 (목)
(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생활묵상 : 고독사한 한 자매님의 일기장을 보고.......

스크랩 인쇄

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2-04 ㅣ No.187818

 

 

이틀 전에 예전에 개신교 다닐 때 봉사를 한 멤머 중에 한 형제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고독사나 병사 아니면 독거노인 사망 후 유품정리하는 봉사회원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개인적인 부탁으로 전화를 한 이후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전화가 온 것입니다. 처음엔 안부전화를 물었습니다. 그냥 안부전화였는 줄 알았는데 부탁을 하나 했으면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부탁인지 하고 물어보니 고독사한 여자분이 계신데 가보니 천주교 신자였던 것 같다고 해서 마침 제가 천주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이왕이면 천주교인이 좀 같이 해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그런 것 하고 상관없이 이미 시에서 어떻게 조치를 해서 일반적인 조례에 근거해 무연고 처리가 이미 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처음에 유품을 정리하러 갔는데 묵주랑 십자고상이 있어서 천주교 신자인 줄 알았고 또 어떤 노트를 보고 신자였다는 걸 알았는데 아마 20년 정도 냉담을 한 것 같았습니다. 고향은 강원도였던 같습니다. 일기장 같은 걸 보니 강원도에서 신자생활을 한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추적을 해서 먼 친척을 찾았는 모양인데 왕래가 끊어진 지 이미 오래돼 시신을 인수하는 걸 거부했나 봅니다. 저도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무연고 처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래도 종교는 개신교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같은 기독교인지라 고인되신 분의 종교를 존중해 성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 때문에 저를 호출했던 것입니다. 

 

통영에 먼 친척이 있어서 어떻게 자리를 잡은 모양인데 그 친척마저도 세상을 떠났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가족들과도 소식이 끊긴 지도 오래된 모양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노트를 보고 대충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한 인간으로서도 그렇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정리를 하다가 사진 하나가 나와서 봤는데 5년 전 사진인 것 같았습니다. 사진에 언제 찍었고 무엇을 할 때였다고 메모가 돼 있었습니다. 사진상으로 봐서 얼굴로 보면 지금쯤 아마도 예순 중반쯤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같이 함께 정리를 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아무튼 오랜 세월 냉담한 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개종을 한 이후엔 유품정리를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오늘 하고 돌아오면서 마음도 많이 아팠던 게 물론 고독사한 분의 사정 또한 마음이 아팠지만 저도 천주교를 지금 신앙으로 하고는 있지만 이런 문제를 떠나서 우리는 진짜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나서 인간적으로도 신앙공동체에서 만약 소외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진짜 복음의 가르침을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가 하는 것에는 정말 회의적입니다. 솔직히 표현하면 어쩌면 역겹다고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제 얼굴에 침뱉기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14년 동안 보고 느낀 것입니다. 

 

제가 조금 적나라하게 표현을 해보겠습니다. 아주 일부만 빼고 천주교는 일단 개신교에 비해서 엄청 차이가 나는 게 어떤 신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런 정보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개신교처럼 신방 같은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방이 없다고 해도 실제 사목의 일선에서는 그런 걸 모르고 사목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유일한 게 있다면 봉성체하는 신자가 있다면 봉성체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것 외엔 특별한 경우 아니면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국가에 비유하면 권력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국가 권력을 사유하듯이 교회도 이와 닮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닮은 게 아니고 똑같다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교회는 고작 성탄 시기에만 강론에서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구유에 누워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빙자해서 예수님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이 세상에 구세주로 왔다고 표현하며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누추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는 강론대에서 그렇게 선포되지만 말만 그렇지 현실은 전혀 허울뿐입니다. 실제 이런 교회의 모습은 지금도 형법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폐지가 된 줄 아는데 예전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있었습니다. 세상 법에 비유하자면 예수님이 만약 현대판 판사로 계신다면 지금 우리가 속한 천주교의 공동체 모습을 보고 어떤 판시를 하실지 제가 보는 견해로는 혼인빙자간음죄와 비슷한 판시를 하실 것 같습니다. 이거 세상법이지만 하늘나라 법전에 죄목이 있다면 아마도 예수님 말씀 빙자 거역죄라고 억지로 견강부회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인되신 자매님이 어떤 연유로 냉담을 하게 된 것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노트에 끄적끄적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면 성당을 향해 가지는 억한 감정이 그대로 쏟아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차마 그 표현을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분과 그 어떤 분도 연관은 없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도 그분의 죽음 앞에 일말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메모 하나만 표현해보겠습니다. 아마 한때는 교회에서 엄청 봉사도 많이 하고 봉헌도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는 정말 하느님을 위해서 자신의 많은 것을 물질적으로나 몸으로 희생을 했는데 어떻게 세상을 살다보면 기업도 마치 부도가 돼 어려움에 처하듯이 한 개인도 불의의 사고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수 있는 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성당에 손을 내미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건 못할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함에도 왜 교회를 원망하는 맘이 생길까요? 안 도와줘서 그런 게 아닙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극단적인 표현을 하면 아예 모른 체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심리적인 배신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음으로 물질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교회가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쓸 수 있겠느냐고 한다면 그런 신자는 그럼 어디가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통탄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딸을 죽게한 것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딸을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런 어려움을 마음으로나마 같이 아파하고 어떻게 헤쳐나갈지 함께 고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신앙공동체라는 조직을 통해 이 땅에 교회를 예수님께서 세우신 것인데 그 교회가 그런 기능을 하지 않는 불구와 같으니 어찌 피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게 지금 대한민국의 천주교 현 실정입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파 저려옵니다. 항상 글 말미에는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하는데 이 글에서는 그런 인사를 드리는 게 힘이 드네요. 지금이라도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교회를 세우신 그 원의를 잘 이해해서 그 뜻을 헤아려드리는 교회로 거듭났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근데 희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06 5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