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수)
(녹)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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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수원 교구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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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01 ㅣ No.187761

이병우 신부님_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가난한 마음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5,1-12ㄴ)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시작인 참행복 선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참행복한 사람인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듣고 박해를 받으며 모함을 듣는 사람들!

바로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5,12ㄴ) 

 

참행복 선언 중에서도 첫 번째 선언인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마음'에 대해 더 묵상하게 됩니다.  

 

'어떤 마음이 가난한 마음일까?' 

 

온전하게 하느님께로 향해 있는 마음,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사랑에 목말라 있는 마음, 참으로 겸손한 마음, 낮은 곳으로 향해 있는 마음, 감정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마음. 바로 이런 마음들이 가난한 마음이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참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2월의 첫날인 연중 4주일입니다.

기쁘게 시작했던 지난 1월의 기쁨과 고통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워진 마음, 비워진 마음으로 2월을 시작합시다!

마음의 창고에 참행복들을 담도록 합시다!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스바2,3) 

 

(~ 1마카6,63) 

 

조욱현 신부님_1. 참 행복의 역설

오늘 전례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곧 참 행복(마카리오이, μακάριοι)에 관한 말씀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라는 선언은 세상의 상식과는 반대되는 역설적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힘 있고 부유하며, 성공한 이들을 행복하다 말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하고, 온유하며,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을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선포하는 혁명적 선언이다. 

 

2. 구약의 예언과 연결된 가난한 이들

제1독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주님의 날에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스바 3,12)이 주님의 이름에 피신할 것이라 말한다. 이 ‘가난한 이들’은 단순히 재산이 없는 자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아나윔(עֲנָוִים)’이라는 표현은,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는 사람들을 뜻한다. 예언자 즈카르야 역시 메시아를 “가난하고 겸손하게 오시는 임금”(즈카 9,9)으로 예고했다. 바로 이 ‘가난’이 구원 역사의 열쇠이다. 

 

3. 예수님의 새로운 율법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군중을 가르치신다. 이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받던 사건을 상기시킨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옛 법은 두려움으로 주어졌으나, 새 법은 사랑으로 주어졌다.”(De sermone Domini in monte I,1) 즉, 산상설교는 외적인 규율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역시 참 행복을 “그리스도인 삶의 헌법”이라고 불렀다. 그는 “가난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의탁이며, 교만을 버리는 첫걸음”(참조: In Matthaeum Homiliae XV)이라고 강조했다. 

 

4. 바오로 사도의 역설: 약함 속에 드러나는 힘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들을 택하셨음을 상기시키고 있다(1코린 1,26-31). 이것은 인간의 자랑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1코린 1,31)는 말씀은, 참 행복의 첫 번째 선언, 곧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자기 힘과 재산이 아닌 유일한 보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시각

공의회는 사목 헌장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가난과 박해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증거해야 한다.”(38항)고 가르친다. 또한 교회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특히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해야 한다.”(교회 8)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영적 태도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차원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과 연대하며, 정의와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6.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

나는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인가? 재물이나 명예, 자기 고집에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는가? 나는 받은 은총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는가? 가난은 빼앗김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더 큰 부유함을 얻는 길이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 이 선언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루어져야 할 현실이다. 우리가 교만과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참 행복이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참 행복은 소유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가난한 정신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며, 받은 것을 나누는 삶에 있다. 그러할 때 우리도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참 행복의 길

 

[말씀]

 

■ 제1독서(스바 2,3; 3,12-13)

 

요시야 임금(기원전 640-609)이 사망한 다음, 남 유다는 망국을 향하여 치닫기 시작합니다.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펼쳐질 이 위협을, 예언자 스바니야는 더욱 무시무시한 또 다른 위협의 한 단계로 이해할 뿐입니다. 이 최후의 위협은, 반역을 일삼는 교만한 당신 백성을 거슬러 하느님께서 친히 내리실 응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 “분노의 날”에도 의로움과 겸손을 사는 이 땅의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은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당신 백성을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 제2독서(1코린 1,26-31)

 

코린토 공동체 신자들은 세속적인 잣대로 본다면 순수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기에, 힘 있는 자들이 조장했던 분열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되었으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해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강하게 질타하면서, 그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상기하도록 촉구합니다. 주님은 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순수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지혜를 드러내시는 분임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 복음(마태 5,1-12ㄴ)

 

예수님은 군중,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의롭지 못한 현실들과 갖은 박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참 행복의 길을 설파하십니다. 이들은 현실 생활에 충실했기에 어떤 것이 환상적이고 어떤 것이 참된 것인지를 가릴 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보잘것없었지만, 하느님 앞에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늘 기쁨으로 충만해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참된 아들들이며, 바로 이들에게 하늘 나라가 약속됩니다.

 

[새김]

 

성경이 말하는 ‘가난’은 경제적인 또는 사회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성향과 마음의 자세를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성경은 가난이 지니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드러내 주는가 하면, 신약성경은 한발 더 나아가 ‘가난한 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재물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초연할 것을 자주 강조하고 계시는데, 이는 그들이 진정한 보물인 행복을 갈망하고 그것을 찾아 누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경제적 부를 누리는 자들은 흔히 자신의 정신적 빈곤 상태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참 행복’이 선언됩니다. 이 선언은,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처음 설파하신 가르침이며, 그리스도 신자들의 행복에 대한 기본 강령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이들은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자신의 죄를 슬퍼하는 사람들, 이웃에게 늘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람들, 악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도록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나머지 그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모든 신앙인이 신앙 안에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신앙하면 먼저 이웃을 위한 희생, 봉사, 참음, 나눔 등의 덕목이 자주 제기되지만, 신앙 안에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신앙 또는 신앙생활은 의미를 잃게 되고 오래 지속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은 신앙으로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희생과 봉사 등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고, 그 덕분에 행복의 정도는 더욱 높아만 갈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참 행복의 길을 일러주신 이유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이 길을 그대로 따라 늘 행복한 사람임을 드러낼 수 있는, 보람 있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송영진 신부님_<죽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12ㄴ)”

 

 

 

1) 이 말씀에서 ‘박해’에 관한 말씀은,

 

사도들의 이야기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최고의회 의원들은)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5,40-42).”

 

여기서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함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입니다.

 

사도들은 박해와 모욕을 당한 일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도로 인정받은 것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음을 기뻐했습니다.

 

매를 맞고, 모욕당하는 것이 기쁜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인데,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있으면,

 

그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2) ‘가난’에 관한 말씀은,

 

초대교외 공동체의 모습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2.44-47).”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글자 그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재물에 대한 탐욕도 없었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도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는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사도 4,34).

 

이 말은, 그 공동체에서는 남들보다 더 부유한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랑만 가득한 공동체의 모습

 

자체가 복음 선포였고, 신앙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찾아왔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하늘나라를 지상에서

 

실현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나중에, 즉

 

죽은 다음에 얻게 되는 행복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서,

 

하늘나라를 지상에서 미리 실현할 수 있습니다.

 

모두 마음을 모아서 함께 할 수만 있다면...>

 

 

 

3) ‘슬픔’과 ‘온유’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것’과

 

‘평화’에 관한 말씀은, 스테파노 순교 후의 상황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1ㄴ-4).”

 

여기서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라는 말에 대해서,

 

“스테파노가 하늘나라에 들어갔다고 믿었다면 기뻐하는 것이

 

옳은데, 왜 통곡했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스테파노의 죽음을 슬퍼했겠지만,

 

그것보다는 교회를 박해하는 이 세상의 죄가 안타까워서,

 

또 박해자들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울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루카 23,28).

 

스테파노가 살해당하고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사도들과 신자들은 그 박해에 세속적인 방식으로 맞서지

 

않았고, 또 사울에게 앙갚음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를 실천한 것입니다.

 

흩어진 신자들이 숨어 있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모습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의

 

모습이고, 또 ‘주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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