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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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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2/1) : 연중 제4주일 * 제1독서 : 스바 2,3; 3, 12-13 * 제2독서 : 1코린 1, 26-31 * 복음 : 마태 5,1-12(연중 4주 주일)
1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 <오늘의 강론>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행복하기를 바란다. ~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갈망한다 해도 유일한 목표는 행복이다.”
그런데 진정한 ‘참 행복’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행복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값지고 좋은 것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록펠러는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느냐?’는 질문에 “1달러라도 더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과 애착을 채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될까요?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스바니아 예언자는 “주님의 날”을 예고하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행복을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스바 3,13)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주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으니”(1코린 1,30 참조) 우리의 행복임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첫 번째 참 행복’을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
한편, 삶에는 결핍과 슬픔이나 고통이 끝없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행복의 반대는 이러한 결핍이나 슬픔이나 고통이 아니라, 생기 없는 무기력함과 무감각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결핍과 슬픔과 고통은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행복한 삶’은 생기 있는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살아있을 때 일 것입니다. ‘충만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자아의 깊은 곳을 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자리요, 존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영혼을 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선언’으로, 비록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어도,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행복하다는 하늘나라의 성취에 대한 예언자적 선언이며 축복입니다. 사실, 당시의 유대교는 재물을 가진 자, 배부른 자, 웃는 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자이고, 가난한 이, 굶주리는 이, 우는 이는 하느님이 버린 결과로 비참하게 된 이들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많고 적음, 배부름과 배고픔, 기쁨과 슬픔을 넘어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우리가 가난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비록 우리가 가난하지만 이미 그분을 차지한 까닭에 부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슬퍼할 줄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죄를 슬퍼하되 이미 자비 안에서 위로받고 기쁘기 때문이요, 우리가 진정 온유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있어야 할 하느님 품 안에 있기에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감미로움에 빠진 까닭입니다. 우리가 진정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야하는 이유는 주님을 극단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기에 그분 외에는 결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기 때문이요, 우리가 진정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주님의 마음을 품은 까닭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분의 손길에 매만져진 까닭이요, 진정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의 영에 끌려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요,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인 까닭입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즐거워 할 일입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이란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삶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나머지 것들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바로 이때 필요한 한 가지는 물론 다른 모든 것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내용은 같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실현하는 것, 곧 하느님이 바라시는 모습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12)
주님! 제가 가난을 살게 하소서. 비록 ‘쓸모없는 종’이지만, 당신 앞에서는 부유하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이 제 가슴에 부어지게 하소서. 온유하게 하소서. 겸손하고 양순하신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소서. 당신 외에는 결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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