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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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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면서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i)’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로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행위와 실천을 통한 믿음을 강조한 야고보서를 쓰레기처럼 여겼습니다. 개신교회의 전통에서도 야고보서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야고보서를 의미 있게 생각했습니다. 야고보서를 통해서 ‘병자성사’의 성서적 근거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오게 하십시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그 사람 위에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믿음에서 우러난 기도는 병자를 구원하고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저도 야고보서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오늘은 야고보서의 신학 사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믿음과 율법의 실천을 대립시킨 바오로 서간들과는 달리 야고보서는 윤리를 가르치는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말과 행동을 대립시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둘째, 야고보서는 세 가지 실천적 믿음, 곧 행동하는 믿음과 인내하는 믿음과 기도하는 믿음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행동하는 믿음의 모범은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 아브라함과 유대인들이 보낸 심부름꾼들을 친절하게 맞아들인 예리코의 창녀, 라합을 이야기합니다. 인내하는 믿음의 모범은 욥을 이야기합니다. 욥은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했다면 하느님께서 나쁜 것을 주셨을지라도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믿음의 모범은 엘리야를 이야기합니다. 엘리야는 기도로서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야고보서는 공동체 윤리와 사회 윤리를 강조합니다. 고아들과 과부들에 대한 배려, 전쟁과 살인의 뿌리는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교만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고통받는 사람,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주님의 봉헌 축일입니다. 많은 본당에서 오늘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성합니다. 봉헌 축일에 초를 축성하는 것은 초가 가지고 있는 3가지 특성 때문입니다. 초의 3가지 특성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삶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첫째, 초는 밝은 빛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진리의 빛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둘째, 초는 따뜻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나의 멍에는 가볍고,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이들, 슬퍼하는 이들은 모두 나에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마음은 곧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셋째, 초는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십자가의 희생은 가장 숭고한 봉헌입니다. 그것이 우리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봉헌과 기도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와 부유한 바리사이파의 헌금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는 봉헌은 가난한 과부의 정성 어린 헌금이었습니다. 부유한 바리사이파의 봉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와 바리사이파의 교만한 기도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는 기도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바리사이파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정점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아드님이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늘 겸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제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봉헌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봉헌은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봉헌은 나의 허물과 잘못까지도, 나의 원망과 실망까지도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봉헌은 나의 삶을, 이웃들을 위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야고보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행동하는 믿음, 인내하는 믿음, 기도하는 믿음’을 봉헌하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되신 외 아드님께서 오늘 성전에서 봉헌되셨듯이 저희도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저희 자신을 봉헌하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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