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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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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2-01 ㅣ No.187748

 

어제 절친인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제일 먼저 전화를 줬습니다. 친구는 20년째 집사람을 간병해왔습니다. 친구는 결혼 후 1년 지나서 아내가 처음에 뇌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서울에 가 진단을 받았는데 몸에 신경이 잘 전달되지 않는 특이한 병이었습니다. 진단을 받고 친구는 직장도 그만두고 집사람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만 온통 신경을 쏟아부었습니다. 1년을 정말 죽을 각오로 명의라고 소문난 명의는 다 수소문해서 치료를 받아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치료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의학적으로는 기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기를 했다고 하면 그렇지만 거의 희망이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근데 친구는 힘들긴 해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친구 아내는 대학 커플이었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된 후에 모든 친구를 다 끊고 저와만 연락을 하며 지내왔던 것입니다. 저는 친구이지만 다른 건 모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만 친구를 존경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며칠 전에 올린 글 어떤 자매님의 이상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사실 그 내용의 생각을 가진 게 어쩌면 이 친구를 20년 동안 지켜보면서 무의식 속에 저도 모르게 가지게 된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술을 잘 못하지만 아주 간혹 한 번씩 이 친구에게 술친구가 돼 줍니다. 아내가 사고로 그렇게 된 이후에는 어떤 사람과도 만날 그런 처지가 안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친구를 위로하고 힘을 주기 위해 술친구가 된 것입니다. 이 친구를 만나면서 어쩜 친구를 통해서 인간을 배운 것도 있습니다. 같은 나이의 친구인데 왜 존경한다고 했을까요? 단순히 아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통채로 버렸다고 해서 존경하는 게 아닙니다. 친구가 가진 정신 마인드가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친구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종교도 없습니다.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는데 기적이 일어나면 아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은 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데 늘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이 말을 친구는 항상 머리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일 전에 잠을 자는데 꿈을 꿨다고 합니다. 꿈에서 누군가 자꾸 자기를 깨우더랍니다. 그 꿈에 그만 일어나게 됐던 것입니다. 마침 일어난김에 물을 먹으려고 거실로 나가서 물을 먹고 들어오는데 집사람 손을 보고 엄청 놀랐다고 했습니다. 오른손이 배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손은 신경상 어떤 문제 때문에 배 위에 올라갈 수도 없고 또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뭔가를 잘못 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에서 일어나 봤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게 왠 일입니까? 

 

친구가 아내 가까이 가 봤는데 손이 배 위에 있고 또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봤다는 겁니다. 너무 놀라 다음날 서울 병원으로 갔는데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이럴 수 없는데 기적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하반신 신경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이면 재활을 잘 할 경우 장담은 할 수 없는데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답니다. 친구는 그날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런 후에 장모님께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고 장모님이 바로 비행기로 서울로 왔다고 했습니다. 평소 장모님은 딸이 그렇게 됐기 때문에 차마 눈을 감고 죽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늘 말했는데 이런 기적이 일어나니 장모님도 역시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내 딸을 살린 건 제 친구라면서 처음으로 장모님이 친구를 안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답니다. 친구는 어떻게 장모님 이걸 은혜라고 하니 당치도 않습니다라고 하며 같이 부둥켜안고 병원이 눈물바다로 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친구가 신앙은 없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언젠가부터 친구에게 하느님을 믿지는 않지만 가끔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 친구야, 너는 다음에 죽으면 하늘나라 천국에 갈 거라고 확신을 한다 " 하느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저는 친구에게 위로를 이렇게 항상 해줬습니다. 만약 너가 하늘나라 가지 않는다면 내가 만약 하늘나라 갈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약 가게 돼서 하느님 앞에 가게 되면 너를 위해 하느님께 탄원해 줄 걸 약속하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설득시킨다는 건 표현이 이상하지만 하느님을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하느님을 믿지 않았어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실제로 목숨을 바치고 하는 건 아니었지만 친구의 삶은 삶 자체가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보다 더 위대한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비록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고 해도 어쩌면 평생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희생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보다야 더 낫지 않겠는지요 하고 제가 탄원을 한다면 과연 하느님은 어떤 판단을 하실 것 같으신지요. 저는 하느님께서 제 탄원을 들어주실 분이라는 걸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가 믿는 하느님은 분명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자신의 아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까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이 정도인데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보다는 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보다 더 해야 한다는 건 바로 ' 숭고한 사랑 '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 친구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아내를 위해 희생을 했을 때 나중에 어떤 신이 자신에게 뭔가 보상을 해 줄 것이라는 그런 기대심리 같은 것조차도 없는 그저 단순히 자신의 와이프만 바라보며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은 그런 사랑, 바로 그런 사랑은 어쩌면 우리가 하느님을 믿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라고 할 때 그때의 사랑보다도 더 위대한 사랑일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조건도 보상도 생각하지 않은 진정으로 순수 사랑이었기 때문에 더 위대할 거라고 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이런 사랑을 하는데 우리는 이보다도 더 위대한 사랑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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