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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여탕의 모습 우리 영혼의 현 모습 너무 닮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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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제가 청소를 한 사우나 여탕이 그럴 경우는 없지만 ' 여중 여고생' 전용 사우나였다고 했을 때 그럴 때도 제가 청소를 할 경우 미친 미친 하는 그런 말을 했을까요? 만약 그런 사우나였다면 저는 1도 짜증을 내지 않았을 거고 어쩌면 사랑스런 마음으로 청소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딸은 없지만 딸이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이해를 하면 그렇게 됩니다.
어려서 철이 없다고 생각하면 전혀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충분히 이해를 하기 때문에 만약 저라면 사랑스런 마음으로 해 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극과극을 달리는 것입니다. 제가 짜증이 나는 건 다 성인인 주부입니다. 한 가정의 엄마입니다. 정말 그런 분의 행동이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한번은 남탕과 여탕을 비교해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이건 완전 대한민국이 뒤집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썸네일에 '최초 여탕 천태만상 공개'라고 하면 여자는 이게 뭔가 싶어서 보게 될 거고 남자는 또 생각지도 못한 호기심에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썸네일이 있다면 순간 접속자가 많아 아마 서버에 랙이 걸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앙도 그럴 겁니다. 당연히 다 아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현상인데 이해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도 이와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언급한 내용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사우나 청소하면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올린 글에서는 아주 일부분만 언급했습니다. 실제 근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걸 조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제목에서 여탕의 모습과 우리 영혼의 모습이 너무 닮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런지 한번 보시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잠시 몇 가지 실제 모습을 언급해야 실감이 될 것입니다. 제가 제일 먼저 처음 여탕에 주인과 들어갔을 때 내부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주인한테 " 여긴 애들이 많이 오나보죠" 했습니다. 그랬더니 " 애들은 무슨 애들요. 다 주부들이고 할머니들인데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니 왜 이리 난장판입니까? 아 원래 여탕은 이래요.
여기서 순간 놀래자빠질 뻔했습니다. 여탕은 원래 그렇다는 주인의 말에요. 저는 한두 시간 정도만 예상하고 왔는데 이건 두 시간 해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거고 한마디로 골때리는 그런 상황인 겁니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어떤 모습인지 일부분만 언급하겠습니다. 한 달 하면서 탕에서 나오는 쓰레기 종류가 가관입니다. 남탕은 맨날 정해져 있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고작해야 일회용 용품과 빈캔 그것도 어쩌다가 아니면 이온음료 병 정도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여탕은 온갖 게 다 나옵니다. 제일 짜증나는 게 목욕탕 구석 구석 계란껍질이 왜 그리도 많은지 정말 처음엔 미칠 정도였습니다.
또 그것도 탕에 물을 빼면 탕 밑에도 간간이 있는 것입니다. 이건 어쩌다가 그런 게 아니고 거의 매일입니다.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게 탕 속에서 나오는지 말입니다. 아니 그럼 탕에서도 계란을 먹는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주위에 때도 밀고 할 텐데 이런 곳에서 이게 목으로 넘어간다는 사실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 씨, 김밥 같은 데 있는 단무지 조각, 일회용 대일밴드, 요플레 각, 피티병 뚜껑, 일회용 용품 , 고구마 껍질 이 정도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백번 이해해 이런 게 나올 수 있다고 해도 그럼 잘 사용하고 곳곳에 있는 쓰레기통처럼 생긴 바구니에 넣으면 될 텐데 넣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바닥 온 전신에 구석 구석에 놓고 너질러 놓고 가니 이게 뭐 대책이 없는 거죠.
일단 뭐 어떤 경우는 내부에서 마치 분리수거를 해야 할 판국이니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탕 밖 파우더룸을 옷장 라커도 보면 남탕은 어쩌다가 라카가 열려 있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합니다만 여탕은 이건 그냥 열려 있는 게 아주 많습니다. 탈의를 하고 집에 갈 땐 조금 닫고 가면 될 텐데 한두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 그런 모습으로 보면 저는 정신이 사납던데 그걸 그렇게 사용하는 걸 보고 이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탕 내부 곳곳에 붙어 있는 광고성 문구는 조금 황당하기도 한 것도 있고 하지 말라는 건 탕 내부에도 탕 외부에도 곳곳에 있습니다. 남탕에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 그것도 겨우 두 개 붙어 있습니다. 이걸 보고 마치 개구쟁이 애들 키우는 집에 엄마가 애들한테 하지 말라고 경고문을 써 붙여놓은 것 같은 그런 분위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제가 열거한 이런 모습 전체를 한번 보세요.
제가 여성의 부끄러운 면을 들추어내기 위해 이런 걸 올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상상을 해 보면 상상이 되시죠. 바로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 영혼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묵상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성당은 미사를 하고 또 전례로 표현하자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광의로 말하자면 공동체가 모여 다양한 일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꾸리아, 레지오 등등 다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조직을 이루려면 각각 구성원이 있어야 하겠죠. 이런 일련의 각각 구성원들이 바로 사우나로 비유하자면 내부나 외부의 물품의 비치 상태와 같은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담기 위한 통입니다. 누가 공지를 하지 않아도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이걸 누가 쓰레기통 옆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어주세요라고 설명을 해야 쓰레기통에 넣을 수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무언의 약속입니다.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이런 무수한 보이지 않는 서로가 지켜야할 규범이 있습니다. 그 규범의 최상위에는 인간 사회에서 있는 헌법처럼 하느님의 가르침이 있고 성당의 내부 생활규범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 하나가 바로 사우나에 붙어 있는 금지규범 같은 것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라커 문 같은 건 특이한 경우 아니고는 그런 걸 가지고 일일이 다 사용 후에는 라커문을 닫아달라고 하는 그 정도의 요구 문구는 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정도는 묵시적으로 다 기본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지켜야 할 에티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신앙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 지켜야 할 에티켓 같은 게 많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경우는 이게 안 지켜지니 강론대에서 본당공지사항으로 공지를 해야 하니 말입니다. 어떤 경우는 솔직히 이런 공지를 그것도 제대에서 해야 할 정도로 이렇게 미성숙한 신앙인인지 참 허탈할 경우도 있습니다. 어디 초등학교 애들 주일학교도 아니고 다 성인인데도 말입니다. 주일학교 공지사항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그것도 평균 신앙한 시간과 세월을 보면 수십년 한 사람들에게 고작 하는 공지 안내사항이라고 생각해보면 솔직히 말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걸 어느 누구 하나 진지하게 이런 단면을 고민해보는 신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일반 현실을 놓고 말하면 전혀 실감이 안 될 것입니다.
이 여탕의 모습을 제가 구체적으로 묘사를 하고 여기에 비유를 하니 이제는 조금 우리의 모습이 피부로 와 닿을 것입니다. 제가 매일 탕 청소를 하러 갔을 때 맨처음 모습과 마지막 다 청소를 하고 나올 때 최종점검을 할 때 양 모습을 비교하면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우리도 마치 이와 같지 않을까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정돈된 삶을 살지 못해 어수선한 우리의 영혼의 모습이 성당에 갔을 땐 예수님의 모습과 그분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말씀을 강론을 통해서 어지러진 우리의 영혼을 다시 한 번 더 청소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어수선한 우리의 영혼을 정돈하고 가는 게 마치 청소를 다 한 후에 정돈된 사우나 내부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우리의 더러운 면을 딲아서 새롭게 해 주시기 위해서는 얼마나 역겨운 것을 많이 보셔야 하는지 그 모습을 생각하면 어떤 경우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탕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려면 그 더러운 것도 보고 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우리의 더러운 모습을 씻겨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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