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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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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면서 강의를 듣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악어와 악어새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공생의 관계입니다. 악어는 이 사이에 있는 음식물 때문에 불편한데, 악어새가 음식물을 없애 주어서 좋고, 악어새는 안전하게 먹이를 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냥 산책하면 조금 지루할 수 있는데 강의를 들으면 산책의 지루함을 피할 수 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인문학적인 소양을 넓힐 수 있어서 좋습니다. 산책을 통해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산책을 통해서 마음의 양식을 얻으니 이 또한 좋습니다. 한국에서 동창 신부님이 2주일 있다가 갔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오니 한국의 소식을 들어서 좋았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추운 서울을 떠나서 따뜻한 달라스에 오니 좋았다고 합니다. 마침 부주임 신부님이 과달루페 성지순례를 갔을 때입니다. 동창 신부님이 영어 미사를 집전해 주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2026년에는 나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해 주어라.” 인류의 역사 역시 이런 흐름을 따라왔습니다. 농업혁명의 시대에는 인문학이 사회를 떠받치는 뿌리였습니다. 인간이 누구인가, 공동체는 무엇인가를 묻는 사유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법이 사회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질서와 규칙, 책임과 권리가 문명을 이끌었습니다. 미국은 이를 헌법으로 승화시키며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분립이라는 구조를 세웠고, 산업사회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움직이는 근간은 데이터입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판단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은 우리의 선택을 예측합니다. 22세기로 향하는 인류는 기술적으로는 점점 더 강력해지지만, 동시에 깊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기술만 앞서가면, 인간은 효율적인 존재가 될 수는 있어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22세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성은 기술의 속도를 늦추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인간의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입니다. 데이터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지만, 영성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영성이 사라진 사회는 연결되어 있지만 고립되고, 소통하지만 외로워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입니까?’ 세포는 끊임없이 주위에 있는 다른 세포에게 영양분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세포라고 합니다. 자신의 영양분을 나누지 못하는 세포는 ‘암’ 세포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새해에는 ‘나’라는 틀에 갇혀있기보다는,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의 것들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의 욕망과 나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은 모두 내 형제요, 내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내 출세와 성공을 위한 디딤돌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도움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내 형제요 어머니입니다. 홀로 되신 어머니, 늘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어머니, 당뇨와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 이제 허리마저 아프셔서 수술해야 하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런 당신에게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형제요 어머니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제 1월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나누고 싶습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외로움은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라고.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고, 눈이 오면 눈길을,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고 말합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자기 삶의 길을 걸으라고 합니다. 심지어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외로움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움 속에서도 혼자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을 건너는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서로를 살려 주는 공생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22세기를 향해 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영성의 길입니다. “주님, 서로를 살려 주는 공생의 지혜를 우리 삶 안에 심어 주소서. 기술과 데이터의 시대 안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영성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오늘 만나는 모든 이 안에서 형제와 어머니를 알아보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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