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6일 (월)
(백)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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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가해, 하느님의 말씀주일, 해외 원조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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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1-25 ㅣ No.187613

[연중 제3주일 가해, 하느님의 말씀주일, 해외 원조주일] 마태 4,12-23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더 테레사가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빈민촌을 방문했다가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더럽고 냄새나는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방 한쪽 구석엔 기름이 차있는 등잔이 있었는데 그 청년은 어찌된 일인지 그 등잔에 불을 켜지 않고 어두컴컴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지요.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마더 테레사가 물었습니다. "방이 이렇게 캄캄한데 왜 등을 켜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청년이 답했습니다. “더럽고 지저분한 방을 보기 싫어서 등불을 켜지 않고 지낸지 일 년도 넘었습니다. 이젠 어두운 것이 더 익숙합니다.” 그 말을 들은 마더 테레사는 가지고 있던 성냥으로 방 안에 있던 등을 켰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왜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느냐’고 화를 내며 등을 껐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지지 않고 다시 등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등을 켜고 끄기를 반복하며 옥신각신 하던 끝에 화가 잔뜩 난 청년은 등잔을 창 밖으로 던져서 깨버렸습니다. 다음 날 마더 테레사는 새 등잔을 사서 그 청년이 사는 방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방에 불을 밝혀주고 돌아갔습니다. 10년 후 우연히 그 청년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직 같은 빈민촌에 살고 있지만, 이젠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집에서 지내며 안정된 직장을 얻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이런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키 작은 수녀님께 전해주시오. 그 때 당신이 켜 놓은 등불이 아직도 내 삶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고 말이오.”

 

마더 테레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약한 이들을 찾아가 신앙의 등불을 밝혀준 것은 그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약한 이들, 죄인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그 ‘아픈 손가락’들에게 더 큰 사랑을, 우선적으로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나지요.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공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기 위해 갈릴래아 지방으로 이동하시어 ‘베이스 캠프’를 차리시지요. 그런 예수님의 행적을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갈릴래아라는 지역이 지리적, 환경적, 사회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갈릴래아는 이방인들과 인접한 지역이자, 큰 호수라는 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어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호수 주변에는 땅이 비옥하여 작물이 잘 자라는 이즈르엘 평야가 넓게 자리하고 있어 곡식의 생산량도 풍부했지요. 그러나 평범한 백성들은 그것이 주는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방민족들과 권력자들의 약탈이 극심했기에 오히려 빈곤이 더 심했지요. 자연스레 그곳 주민들의 마음엔 근심과 걱정, 박탈감과 상처라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가 그들 가운데에 자리를 잡으셨으니, 주님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될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그들이 가장 먼저 누리게 되었으니, 그들의 마음 속에 희망이라는 큰 빛이 떠올랐다고 본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에 사시게’ 되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그분께서 베푸시는 큰 사랑과 자비를 많은 이들이 느끼게 하시기 위해 병자들을 치유해주시고, 마귀 들린 이들을 그 속박에서 풀어주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또한 갈릴래아 방방 곡곡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과 계명이 무엇인지를 여러 비유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그 모든 활동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고 받아들이며 따름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과 눈이 하느님을 향하는 ‘회개’가 필수적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기적과 활동으로 하느님의 현존과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동시에, 말씀으로는 회개를 강조하십니다. 회개는 세상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 때문에 죄로 기울어진 마음을 고쳐먹는 일입니다. 눈으로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좋은 것들을 바라보고, 귀로는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며, 마음과 삶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그분께서 누리시는 참된 생명과 기쁨을 영원토록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네 사람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모습이 바로 ‘회개에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필요’ 때문에, 그들에게 ‘일’을 시키시려고 부르신 게 아니지요. 당신께서 평소 눈여겨 보시고 마음에 담아두셨던 이들을 가장 먼저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부르신 겁니다. 그래서 ‘와서 일 좀 해라’라고 하시지 않고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맡겨진 소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그분 뒤를 따르는 것이지요. 나는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지, 어느 길로 가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모르기에, 모든 주도권을 ‘주님’이신 그분께 맡겨 드리고 묵묵히 그분 뒤를 따라 걷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 즉 ‘사람을 낚는 일’을 그분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건 어부가 깊은 물 속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리듯, 죄악이라는 짙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웃을, 죽음과 같은 큰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형제를 그 깊은 수렁 속에서 건져 올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구해낸 이웃, 형제들과 함께 주님의 뒤를 따르는 ‘신앙의 길’을 충실히 걷다가, 그 길의 끝에서 팔을 벌리고 서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은 점진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가장 먼저 내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의지하는 도구인 ‘그물’을 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이 세상에 재물로 쌓아올린 바벨탑인 ‘배’를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애착하여 나를 이 세상에 속박되게 만드는 기본적 인간관계인 ‘아버지’를 버립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내 마음 속엔 ‘나’ 자신과 하느님만 남지요. 그렇게 온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그분과의 관계 안에 또한 그분의 뜻 안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하느님을 닮은 그분의 거룩하고 완전한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하늘 나라에 들어가자고, 그곳에서 하느님과 함께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자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나의 조건을 보고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신 안에 받아들여 주신 것이지요. 그러니 나를 하느님 자녀답지 못하게,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세속의 것들을 벗어던지고 주님의 뒤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그분과 함께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맘껏 누려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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