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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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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스물일곱 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성군(聖君)으로 기억되는 왕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을 떠올릴 것입니다. 두 왕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학문을 장려했고, 사람을 키웠다는 점입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세워 젊은 학자들을 길러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한글’을 남겼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한글로 이렇게 쉽게 자판을 두드리며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과학기술 또한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자격루와 해시계, 천문 관측 기구, 그리고 측우기까지. 특히 측우기는 세계 최초로 강수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도구였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시간을 읽고, 비의 양을 재던 이 모든 노력은 결국 백성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조대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규장각을 세워 학문과 정치를 연결했습니다. 규장각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정책을 연구하고 인재를 키우는 국가의 두뇌였습니다. 정약용과 같은 뛰어난 인재들이 이곳에서 자라났습니다. 왕이 공부했고, 학자가 존중받았을 때 국가는 숨을 쉬었습니다. 반대로 역사에는 우군(愚君)으로 평가받는 왕들도 있습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욕망과 분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사화를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백성을 쫓아내 사냥터를 만들었으며, 사치를 일삼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루아침에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권력은 오래 가지 않았고, 상처만 남았습니다. 선조 또한 아쉬움이 큰 왕입니다. 일본의 침략 경고를 무시했고, 전쟁 준비를 소홀히 했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지도층은 도망쳤고, 백성은 고통을 떠안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이라는 탁월한 인재가 있었지만, 선조는 그를 믿지 못하고 의심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선택은 나라 전체에 큰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옛날 왕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가는 조직이고, 조직에는 책임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도 작은 조직의 책임자로 살아갑니다. 가정의 책임자이고, 공동체의 일원이며, 신앙인의 삶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스티븐 코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모델로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오늘 복음 앞에서, 저는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삶의 원칙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원칙입니다. 옛 항해자들은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분명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원칙은 분명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눈에 보이는 이웃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시니,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둘째는 결과를 생각하며 시작하는 삶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는 이유는 가을의 결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셨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지만, 선의 결과는 생명입니다. 신앙은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삶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줍니다. 셋째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장 소중한 일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고, 바오로 사도에게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재물과 명예, 권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우리를 이미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이웃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원칙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결과를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치유가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쁜 일들보다 소중한 일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실 때도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리고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꽃동네와 요셉의원이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깊은 샘의 물을 끌어 올리듯, 우리의 작은 사랑과 희생은 하느님의 은총을 끌어냅니다. 2026년 1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결심한 것을 끝까지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구급차를 타고, 신앙에 목마른 이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안내하는 따뜻한 이웃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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