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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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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놀라운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율 주행 자동차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아도 자동차가 스스로 차선을 읽고, 장애물을 피하고, 목적지까지 달려갑니다. 라이다(LiDAR)와 다양한 센서, 카메라, 그리고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이 함께 움직이며 판단합니다. 멀리서 보면 자동차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해진 경계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프로그램이 허용하는 범위, 알고리즘이 계산하는 범위, 미리 학습된 데이터의 범위 안에서만 주행합니다. 그래서 자율 주행 자동차의 ‘자율’은 사실 완전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보다 훨씬 더 큰 선물, 곧 자유의지, 그것도 하느님의 뜻마저 거스를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인간은 자유 때문에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때때로 자신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자유가 있어야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이 자율 주행 자동차처럼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면 우리의 선행, 우리의 기도, 우리의 사랑은 모두 ‘설계된 기능’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자유는 우리를 위험하게도 했지만, 동시에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연을 바라보며 스스로 질문했습니다. “이 돌을 이렇게 깎으면 더 잘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강을 가로질러 갈 다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과 상상력에서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을 발견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자유와 상상력이 만든 첫 번째 혁명이었습니다. 수레바퀴의 발명은 인간의 이동과 물류 문명을 열었습니다. 인류는 자유로운 사고로 도시를 만들고, 농업을 고안하고, 항해술을 개발하고, 의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모든 문명의 발전은 ‘명령이나 프로그램’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인간의 생각, 창의성, 실패와 도전이 합쳐져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자유의지는 문화를 만들었었습니다. 문명 위에 문화가 생겼습니다. 문화란 인간이 자유롭게 공유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모여 언어를 만들고, 공동체의 규범을 만들고, 축제를 만들고, 신앙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유다인들의 풍습, 로마의 법 제도, 그리스의 사상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습니다.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형성한 문화는 인류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간에는 자유로운 인간의 사유가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예술과 문학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영역은 예술과 문학입니다.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는 자유로움 속에서 다비드상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만들었습니다. 베토벤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열어 교향곡 9번 ‘합창’을 남겼습니다. 한국의 김소월 시인은 ‘진달래꽃’에서 인간의 슬픔과 사랑을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유와 죄, 구원에 대한 인간 내면의 갈등을 ‘죄와 벌’이라는 문학 작품으로 펼쳐 보였습니다. 어떤 인공지능도 인간의 슬픔, 회한, 사랑, 신앙의 깊이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예술과 문학은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온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허락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교우들의 삶에서도 이러한 자유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달라스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민의 역사가 있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갈등을 대화로 풀어내는 결정이 있습니다. 위기 앞에서 믿음을 선택하는 용기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우리 본당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성가대를 선택하는 자유, 주일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결단,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성당 주변을 정리하는 자발적 사랑, 공동체 행사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선택이 모여 주님의 향기를 담은 문화가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크지 않아도, 자유롭게 선택한 사랑은 하느님 앞에서 아름답습니다. 자유의지는 예술과 문학을 만들었습니다. 예술은 기계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영혼이 자유롭게 흘러나온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어도, 그 안에 기도, 눈물, 사랑, 희망은 담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공현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공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을 강제로 끌어오지 않으셨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바라볼 것인지, 그 별을 따라갈 것인지, 긴 여행을 감수할 것인지 모두 자유롭게 선택했습니다. 하느님은 비추시고, 인간은 선택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율 주행 자동차처럼 정해진 경로만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걸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지만, 그 자유가 언제나 빛을 향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으로 하느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그 외아들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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