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목)
(백) 주님 성탄 대축일 - 밤 미사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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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슬프고 고통스러운 우리의 현실 안에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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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12-24 ㅣ No.187016

 

요즘 저는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어촌에 살면서 외풍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강풍이 불고 강추위가 밀려오면 아무리 난방을 해도 효과가 미미합니다. 방에 누우면 외풍까지 느껴져 코가 시릴 정도입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방 한 칸조차 마련하지 못해 외풍 정도가 아니라 찬바람이 숭숭 아무런 여과 없이 들어오는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가난하고 겸손한 탄생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그 존귀하고 깨끗한 하느님의 외아들 아기 예수님께서 정갈하고 고상한 아기 침대가 아니라 말구유에 눕혀졌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탄생이었습니다.

이 땅에 탄생하신 메시아께서 너무 부유하거나 거창한 모습으로 등장하시면 가난한 백성들이 기가 죽을까 봐, 작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작고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께 그저 고개 숙여 감사드릴 뿐입니다.

또 다시 성탄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오늘 이 시대에 맞춰 계속 재해석되어야 하고 성찰되어야 합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은혜로운 대사건입니다. 오늘 이 순간도 하느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사람이 되시고, 특별히 오늘 성탄절 날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각자에게 다가오십니다.

오늘의 어둠이 아무리 짙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항상 당신 백성과 동행하시며 아픔과 상실, 고통의 순간에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곧 아기 예수님의 성탄입니다.

성탄 미사에 올 꼬맹이들의 성탄 선물을 사러 나가면서,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 손을 꼭 잡고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십리 길을 걸어 성탄 미사에 갔던 생각. 코가 유난히 긴 외국 선교사 신부님의 서툰 한국말이지만 재미있었던 강론. 미사 후에 이어지던 원조 구호품 나눔, 집에 돌아오면 일 년에 딱 한번 손에 쥘 수 있었던 오리온 종합선물세트...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성탄절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들입니까? 성탄절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마음에 드는 성탄 선물, 잘 차려진 성탄 파티, 달콤하고 로맨틱한 성탄 구유와 전례 등등... 성탄과 관련된 아름다운 추억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 전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던 베들레헴의 마굿간에는 달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분위기는 비참하고 서글펐습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사회적 상황 역시 암울했습니다.

하느님의 이 세상 육화강생은 태평성대 때가 아니라, 가장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 로마 식민 통치 시대, 가장 불안한 헤로데 왕정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던 최초의 모습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처럼 강력한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지혜로 똘똘 뭉친 현자의 모습으로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해결사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힘으로는 머리 조차 옆으로 돌릴 수 없는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 인류 구원의 역사는 바로 오늘 우리 한 가운데,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프고 고통스런 현실 안에서 시작됩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 역시 어려운 순간,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각자 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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