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로 끝나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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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1,67-79은 즈카르야의 찬가를 전한다. 입이 열린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예언했다.
아홉 달 동안의 침묵이 끝난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설명도, 변명도 아닌 하느님을 향한 찬미였다.
불평이 아니라 찬미, 질문이 아니라 선포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 하시고…"
이 노래는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는 회고가 아니었다. 지금 막 일어난 일에 대한 감사에만 머무르지도 않았다.
이것은 예언이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일들에 대한 선포였다.
즈카르야는 갓 태어난 아들을 바라보며 노래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며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그는 알았다. 이 아이가 길을 여는 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더 큰 빛이 오고 있음을.
임신 40주, 출산이 임박한 시기.
이 시기의 태아는 이미 완전한 생명이다.
눈을 뜨고, 소리를 듣고,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사랑하는 이들의 손길에 반응하며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마친 존재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은 때로 이 생명 앞에서도 망설인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의 무게를 재려 한다.
우리는 묻는다.
언제부터 생명인가.
어느 순간부터 존엄한가.
그러나 복음은 다른 자리를 보여준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요한은 기뻐 뛰놀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두 생명이 서로를 알아보고 응답한 것이다.
생명은 설명되기 전에 이미 관계 안에 있었다.
보이기 전에 이미 불려졌고, 환영받기 전에 이미 사랑받고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산모는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숨이 막히고, 고통이 온몸을 짓누른다.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연이어 밀려온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의 정점에서 생명은 세상으로 나온다.
첫울음과 함께, 새로운 존재가 빛을 본다.
어둠이 가장 짙을 때, 빛이 온다.
이 신비를 지켜본 사람은 안다.
생명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얼마나 귀한지.
고통스럽다고 해서 덜 소중한 것이 아니고, 계획에 없었다고 해서 덜 존엄한 것도 아니다.
모든 생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그 별은 멀리서 반짝이는 장식이 아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빛이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죽음의 그늘 아래 머무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오는 빛이다.
환영받지 못한 이들에게,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늘 먼저 찾아오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궁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세상은 그분을 위한 자리를 준비하지 못했지만,
그분은 오셨다. 거부당한 자리 한가운데로, 빛으로 오셨다.
그 탄생은 말한다. 환영받지 못한 모든 생명에게, 어둠 속에 머무는 모든 존재에게.
"너는 이미 함께 있음 안에 있다."
대림시기는 그 빛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지치고, 의심하고, 침묵 속에 머물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제 곧 대림의 마지막 밤, 성탄 전야.
기다림은 끝을 향해 가고 어둠은 물러나기 시작한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임신한 어머니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우리 아기"라 부르듯,
하느님의 약속도 그렇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미 주어진 사랑,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구원.
우리는 오늘 밤,
침묵도 기다림도 고통도 모두 빛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내일이면 빛이 온다.
새벽이 오고, 생명이 온다.
진통의 끝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듯, 기다림의 끝에서 예수님이 오신다.
그분은 우리가 찾아가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다.
우리가 빛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우리에게 오신다.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우리를 찾아온다.
그것이 성탄의 신비다.
모든 생명은 이렇게 찾아온다.
우리의 준비와 상관없이,
우리의 계획을 넘어
언제나 선물로.
즈카르야처럼, 이제 우리도 찬미할 시간이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믿으며, 아직 오지 않았지만 노래하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내일, 그 빛이 온다.
우리를 찾아오는 생명이 온다.
기다림은 끝나고,
찬미가 시작된다.
빛을 기다리는 마지막 밤의 기도
주님,
긴 기다림의 끝에서
저희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아직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미 어둠이 물러감을 압니다.
보이는 생명도, 보이지 않는 생명도
환영받는 생명도, 거부당한 생명도
모두 당신의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내일, 당신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진통의 끝에 생명이 오듯 기다림의 끝에 오시는 주님,
저희를 준비시켜 주소서.
찬미로 당신을 맞이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