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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토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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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토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 마태 17,10-13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공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대예언자인 엘리야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엘리야’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하느님은 주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대로 엘리야는 오직 하느님만을 자기 주님으로 모시며 이교의 신들을 받아들인 배반자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모두가 두려워 벌벌 떠는 권력자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하느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불호령’ 같은 말씀들을 가감 없이 전했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예언’뿐만이 아니었지요.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키서를 보면 구세주를 예비하는 ‘선구자’로서의 역할이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3,23-24).
유다인들은 이런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하여, 구세주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이 땅에 재림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을 준비를 하도록 이끌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엘리야의 현현이라고 믿었던 세례자 요한은 그 임무를 제대로 끝마치기 전에 감옥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지요. 그로 인해 그의 신원에 대해, 그리고 그가 예고한 구세주 그리스도의 신원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생겼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켜 하느님께로 이끌어야 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은 걸 보면 세례자 요한은 성경에 기록된 ‘엘리야’가 아니며, 따라서 그가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던 예수님 역시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한 겁니다. 논리적, 이성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 주장이지요.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자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은 것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드러나는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때가 임박했으니 어서 빨리 회개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라는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탐욕과 집착에 휘둘려 잘못된 길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목숨을 직접 빼앗은 것은 권력자인 헤로데였지만, 그의 말을 외면하고 배척함으로써 헤로데로 하여금 그를 제거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군중들 모두에게도 그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표징들을 보고도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잘못된 길을 고집했습니다. 그 결과 자기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바라던 메시아를 자기들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내 뜻을 이루려는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고집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 가운데에 함께 계시는 주님을 또 다시 내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는 죄인이 되고 마는 겁니다. 신앙은 편안함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 삶의 참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하고 괴로울지라도, 주님과 복음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과 박해를 받을지라도, 주님의 가르침과 계명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길의 끝에서 비로소 만나게 될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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