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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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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목요일] 마태 11,11-15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의 신원과 본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즉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류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비교의 기준을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성인들로 삼으면 그들보다 한 없이 ‘작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하느님 나라에 계시는 성인들은 위대하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비천하다는 식의 단순 비교를 하기 위함이 아니지요.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라는 신원은 비단 세례자 요한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지녀야 할 신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살아갈 사도로 선발됨으로써, 몸은 이 세상에 있지만 그 정신과 지향과 기준만은 이 세상에 속해서는 안되는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다시 말해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자기 편의와 필요에 따라 이쪽 저쪽에 ‘양다리’를 걸쳐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박쥐’같은 모습으로 살아서는 세상에서 성공하지도, 하느님 나라에서 구원받지도 못하지요. 우리는 몸은 이 세상에 있지만 마음과 지향만은 하느님 나라의 기준에 따라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동떨어진’ 상태가 되기에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세상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을 바라보고 따르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그런 우리를 시기 질투할 것입니다. 자기들은 세상 것들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두기에 굳이 하느님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자기들보다 조건이나 상황이 열악한 우리가 오히려 자기들보다 더 큰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들지요. 신앙생활 하면 돈이 나오느냐 밥이 나오느냐 하며 우리를 다그칩니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고 당신 마음대로 하는 하느님을 뭐하러 믿느냐고 회유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남들보다 좋은 것을 더 많이 받지는 못해도 최소한 힘들고 괴로운 일, 슬픔과 아픔은 겪지 않아야 하는거 아니냐고 설득합니다. 그런 말들에 마음이 흔들리고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는 새 하느님 나라를 그들에게 빼앗기게 되지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세상의 논리말고 하느님의 뜻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이 들려주는 것만 수동적으로 듣지 말고, 나를 이끄시는 주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으며 그분 뜻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식별해야 합니다. 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언제나 하느님 뜻에 자기 삶을 비추어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며,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용기있고 씩씩하게 대답한다면, 내가 받은 ‘하느님 나라’라는 귀한 선물을 끝까지 잘 지켜낼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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