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 |
|---|
|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 루카 20,27-40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부활에 관하여 예수님과 논쟁을 벌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한편,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만이 인간이 확증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고 여겼기에, ‘내세’나 ‘부활’과 같은 영적인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이라는 다분히 ‘인간적’인 기준으로 하느님의 권위와 능력을 제한하려고 들었지요. 그런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수혼법’의 예시였습니다. 만약 정말 부활이라는 게 있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일곱 형제 모두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여인은 부활한 다음 그 중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고 물은 겁니다. 그런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부활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긴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로잡으십니다. 부활이란 인간의 상태를 그저 죽기 전으로 되돌려 놓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섭리에 힘 입어 완전히 다른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일단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기준에 의거하여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은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세상의 논리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참된 자유를 누린다고 하십니다. 또한 죽음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어 마치 천사들처럼 매 순간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께서 누리시는 참된 기쁨과 영광에 동참하게 된다고 하시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유의 차원’에서 벗어나 ‘존재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은 여인을 누가 자기 아내로 ‘소유’할 것인지만 생각해서는 참된 부활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삶과 세상을 오직 ‘나’ 중심으로 바라보며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데에만 집착해서는 참된 부활에 이를 수 없습니다. 자식을 얻지 못하고 죽은 그 가련한 여인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참된 부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삶과 세상을 ‘하느님’ 중심으로 바라보며 그분 뜻에 맞는 선택, 그분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참된 부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유의 차원에서 존재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영적 ‘도약’이지요.
그 도약을 이룰 수만 있다면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깨어있는 사람, 그분 섭리 속을 걷는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서부터 이미 부활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하느님 앞에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방법이지요. 하느님이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그분을 이 세상에서 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죽은 영혼들이나 상대하시는 분으로 여기며 그분과 상관 없는 모습으로 살면, 그건 하느님 앞에서 살아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 길의 끝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심을 굳게 믿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분 뜻을 따르고 그분 사랑 안에 머무르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그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이미 하느님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한눈 팔거나 딴 길로 새지 말고 신앙의 길을 꾸준히 걸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