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
|---|
|
휴가 중에 ‘절두산 성지 미사’엘 다녀왔습니다. 그날 미사는 양재동 본당 신부님과 저 그리고 미사 주례를 한 크리스 신부님이 공동 집전했습니다. 양재동 신부님은 본당 예비자들과 함께 왔고, 미사 후에는 새남터 성당까지 도보로 간다고 했습니다. 미사 주례를 하였던 크리스 신부님은 수도회 신부님이었고, 작년부터 절두산 성지 미사를 하는 외국인 신부님이었습니다. 그날 조금 이상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외국인 신부님이 한국인 사제를 한국인 순례자에게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크리스 신부님은 유창한 한국어로 그날 축일인 루카 복음사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들 또한 복음사가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날 미사에는 양재동 교우, 수원 교구, 인천 교구, 대전 교구에서 순례자가 함께했습니다. 사는 곳도 다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미사 중에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양재동 신부님은 예비자 교리를 직접 한다고 했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수녀님이나 부주임 신부님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직접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미 세례받은 교우들을 재교육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타성이 젖었고, 그래서 바뀌는 것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비자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스펀지처럼 교리를 잘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절두산 성지에서 미사 참례하고, 새남터 성지까지 도보로 간다고 했습니다. 예비자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함께한다고 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4가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제의 솔선수범입니다. 사제가 먼저 십자가를 지고, 사제가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제가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확고한 신념과 믿음으로 방향과 목표를 정하면 교우들도 한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셋째는 소그룹 활동과 봉사자의 활성화입니다. 넷째는 본당을 넘어 이웃에 관한 관심과 배려입니다. 본당의 재정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꺼이 나누는 본당입니다. 양재동 신부님을 통해서 부흥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을 지내면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성모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영적 어머니 역할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이제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이제 어머니이시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교회가 ‘사도’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측면에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통해서 치유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발현의 현상이지, 발현의 본질이 아닙니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신앙인이,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파티마 발현에서는 회개와 평화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루르드에서는 치유와 신앙의 부르심이 나타났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앙인에게 “회개, 묵주기도, 단식, 미사 참례, 선행”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을 통해 신앙의 경고와 위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신이 변화하고 신앙을 깊게 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성모님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성모님께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을 선택하신 예수님을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신발, 옷, 책, 전자제품, 운동기구, 친구, 가족, 이웃’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제가 선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저를 선택해 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하면 애착이 있을 수 있고, 욕심이 생길 수 있고, 상실에 대해 아쉬움이 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선택해 준 것으로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제 곁을 떠난다고 해도 속이 상하거나, 아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 것’이라는 틀을 ‘하느님의 것’이라는 틀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는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벽이 사라질 것입니다. 외롭지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지구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