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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성 대 레오 교황학자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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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5-11-10 ㅣ No.186203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성 대 레오 교황학자 기념] 루카 17,1-6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남을 용서하기를 너무나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가 나에게 입힌 피해와 상처를 생각하면, 그로 인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낸 걸 생각하면, 그럼에도불구하고 나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뭘 잘못했느냐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도저히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용서를 상대방보다 도덕적 영적으로 더 우월한 상태에 있는 내가 그에게 베풀어주는 ‘혜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혜택은 내가 베풀 때보다 남들로부터 받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우리는 크든 작든 저마다의 부족함과 허물을 지니고 있고, 살면서 알게 모르게 다른 이에게 피해와 상처를 입히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사는 동안 이미 많은 용서를 받았고, 지금 이 순간도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큰 용서와 자비의 은총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삶을 사는 데에도 수많은 용서를 받아야만 하지요. 그런데 하느님이, 은인들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널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신다면 그 때 우리 마음이 어떨까요?

 

이렇듯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용서를 받아야 하는 죄인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또한 내가 이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용서를 받았음을 기억하면 다른 이를 용서해야겠다는 의지와 결단을 지니게 됩니다. 아무리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잘 살려고 노력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는, 밀접한 관계 속에 사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에게도 피해를 안 끼치겠다며 나 자신을 다른 이와 분리시키려는 태도 자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상처와 슬픔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름 잘해보겠다고 노력한 것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한없이 부족하고 불완전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하는 일에 제한을 두거나 조건을 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가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했다면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그를 용서하며 다시 형제로 받아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가 진심으로 회개한 게 맞는지, 혹시 속으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으면서 그저 눈 앞에 닥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말로만 그런 척하는 게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느님이야 사람의 속마음까지 다 아시지만, 우리에게는 열 길 물 속보다 더 알기 어려운 것이 한 길 사람 속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하루에 일곱 번이나 나에게 죄를 짓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가 아까 나에게 입힌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다시 또 다른 상처를 입히고는, 자기가 이미 회개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배신감과 불신에 속에서 천불이 날 것 같은데 그를 어떻게 다시 내 ‘형제’로 받아들이라고 하시는 걸까요?

 

그래서 제자들은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청했을 겁니다. 자기들의 힘과 의지로는 도저히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좀 도와주시라고 손을 내민 것이지요.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형제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일에 거창하고 대단한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깊이 느끼고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 하나면 형제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여 화해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를 변화시키는 기적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과 권능으로 일으키실 테니까요. 우리는 그저 그 형제와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굳게 믿고 적어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기 위해, 그를 용서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 때가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실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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